2009, 기축년

1/N

by 김동의

새벽 6시 15분에 상동 홈플러스 앞에서 출발하는 회사 셔틀버스에 오르려면 4시 50분부터 5분 단위로 울리는 알람 셋팅이 필수적이다. 분명 잠에 들었는데 몸에 있는 모든 기관이 전혀 리셋되지 않고 브뤠이크 타임인데 왜 일을 시키냐는 식으로 더디게 작동한다.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 앞에서 소심하게 꾸윽꾸윽! 소리를 내며 재촉하는 미키(반려 치와와)를 짧게 쓰다듬고 웅진코웨이 렌탈 정수기에서 물 한 모금 받아 마셔 정신을 차려본다. 전등하나 켜지지 않은 집에서 트렁크 팬츠와 얇은 면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화장실 앞 진열장을 지난다. 진열장 유리는 암흑 속에서도 달빛을 머금은 뽀얀 몸뚱아리를 비춘다. 볼수록 곧 삼계탕에 던져질 하이얀 인삼과 그 자태나 빛깔이 흡사하다.


샴푸하고 클렌징 폼으로 산타 할아버지 수염을 만든 후 쥘레트 4중날 면도기로 천천히 거품을 걷어내듯 쓸어내릴 때 즈음 문득 시간을 오래 끈 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 바디 워시를 도포한다. 샤워 물줄기로 머리끝부터 헹구며 7살 때 우산을 던져두고 마음껏 비를 맞았던 기억과 그때 느꼈던 묘한 해방감을 떠올려 본다. 이런. 벌써 6시 5분이다.


스판기 있는 데님과 얇은 후드 집업 위로 패딩을 걸치고 사원증과 휴대폰을 검은색 인조가죽 토트백에 넣어 오른쪽 어깨에 짊어졌다. 1층 로비 유리문을 열어재끼며 확인한 시간은 6시 13분. 사력을 다 해 달린다. 왕복 10차선의 도로가 있는 사거리의 신호를 무시하고 대각으로 가로지른다. 간신히 버스에 오르면 빵빵하게 틀어진 히터 바람에 순간 숨이 턱 막힌다. 45인승 버스에 먼저 탑승해 있던 사람들은 제발 내 옆에는 앉지 말아 달라는 듯 하나같이 창가가 아닌 복도 방향의 좌석에 앉아 있고 몇몇은 그 뜻을 더 공고히 비추기 위해 육지거북 등딱지만큼 육중한 백팩을 미리 창가 측 좌석에 앉혀두었다. 데님 엉덩이로 그들의 안면을 갈아내듯 파고들어 창가 자리에 비집고 앉아본다.


버스는 빠르면 7시 35분 교통체증이 심한 날에는 8시가 거의 다 돼 연구소 후문에 도착했다.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해볼까 하다가 그곳의 각종 반찬 내음과 꿉꿉한 습기를 머금고 나오는 게 싫어 사무실로 직행한다. 눈이 마주치는 이들에게만 인사를 하고 그룹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벽 쪽에 있는 내 자리에 앉아 PC를 켜고 회사 메일을 살핀다. 알아듣지 못할 결재 문서부터 제품 개발에 관련된 업무 요청 내지는 지시가 한가득 쌓였다. 8시 정각이 되면 사무실 그리고 사무실과 바로 연결된 생산 현장의 스피커에서는 체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누가 시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현장으로 나가 화면으로 송출된 동작을 따라 해보고 옆에서 함께 체조 중인 팀원들과 간간이 스몰 토크도 나눠본다.


체조가 끝나자마자 사무실 안에 있는 두 개의 그룹은 각 그룹장을 중심으로 2열 종대 대형을 갖춘다. 그룹장의 점호와 동시에 공지사항 등을 전하고 오늘도 잘해봅시다 정도의 의미가 담긴 그룹원들의 박수로 조회는 마무리된다. 멍 때리다가 박수의 박자를 못 맞춰 1회만 짝! 치고 자리에 앉는 경우도 왕왕 있다.


조간신문을 테이블 위에 넓게 펼쳐 보던 팀장은 30분이 지나서야 메일함을 열어봤는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OOO!” 하며 호출한다. 당사자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으면 사무실 중간에 앉은 누군가가 “OOO 선임님! 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며 다시 외친다. 호출된 40대 후반의 선임연구원은 팀장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게 왼쪽 가슴에 패용한 플라스틱 사원증이 경박하게 덜그럭 대지 못하도록 손으로 부여잡고 전력 질주하여 가장 끝에 있는 팀장 책상 앞에 서곤 했다.


나에게 주로 업무를 알려주는 연구원은 나와 동갑이며 입사일은 약 2년 반 정도 차이가 났다. 그가 맡던 아이템을 나에게 인계하며 숱하게 불려가 보게 된 그의 모니터 속 하단 작업표시줄은 익스플로러, 엑셀, 파워포인트 등 최소 50개 이상의 미니 창으로 가득했다. 그는 업무적인 이야기도 나만 들리게끔 속삭이듯 전달했고, 다 들었으면 얼른 꺼져서 네 할 일을 고민해 봐 하듯 바로 바코드 마냥 빼곡한 작업표시줄에서 창을 하나 띄워 그의 일을 재개하거나 끝도 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은 몹시 고요하다. 업무적인 전화를 하는 이를 빼고는 누구 하나 떠드는 이가 없다. 가끔 이목이 집중될 정도의 dB을 발생시키는 이는 팀장이나 그룹장 정도의 보직자들이며 이는 대게 질타의 내용으로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곳의 규칙을 어지럽히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엄포를 놓으려는 듯했다.


소녀시대의 <Gee> 뮤비를 화면보호기로 설정해 둔 연구원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매우 입체적이며 아방가르드 한 화면보호기를 실행해 뒀는데, 어느 날 같은 그룹의 연구원이 위에 분들로부터 '이런 화면보호기는 전기 소모량이 많으니 기본 모드로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며 역시 낮은 목소리로 시정할 것을 권했다.


지시한 업무를 하다가 막히면 사내 메신져를 통해 틈나는 대로 소통하던 동기 W 사원에게 문의해 보지만 알 턱이 없다. 같은 사무실 옆 파트에 1년 먼저 입사한 고등·대학 동창 N 연구원 자리로 가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햐...! ASSY가 모햐...?!”


N도 속삭이듯 답했다.


“나도 잘 모르니까 말 걸지 마하...!”


일을 하다 보면 그룹 내 같은 카테고리의 아이템을 담당하는 최고 선임연구원이 나를 포함한 연구원 몇을 이끌고 현장 쪽에 위치한 휴게실로 향했다. 그리 마시기 싫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더욱 마시기 싫은 담배 연기를 접하기 딱 좋은 흡연실에서 마주 보고 앉아 업무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신변잡기를 소재로 토커바웃을 펼쳤다.


회사는 퇴근 셔틀버스로 17시 15분, 19시 45분, 21시 이렇게 세 차례 운영했고, 장시간 근무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수요일(가정의 날)과 금요일(우정의 날) 만큼은 17시 정시 퇴근을 권장했다. 마주 앉은 선임은 나에게 월, 화, 목 3일은 최소 19시 45분 이후 버스를 이용하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주말 또는 휴일에 무료로 출근하는 미덕을 보이는 것이 슬기로운 직장 생활이라며 알려주었다. 한 동갑내기 선배 연구원은 담배를 태우다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이제 우리 나이도 이제 서른인데 키티 핸드폰 케이스는 좀 아니지 않냐는 얘기를 내게 했다.


담배연기가 눈까지 따갑게 만들 무렵 파트 총무를 맡고 있는 한 연구원이 오늘 퇴근 후 회식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회식의 이유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돼서, 누군가가 차(車)를 구입해서 혹은 날이 좋아서, 날이 궂어서 등 정해진바 없이 많았다.


난 신입의 후광이 바래버린 그냥 막내 사원으로 이제부터는 모든 회식비에 대한 각출도 동등하게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평생 회사원으로 돈벌이를 한 아빠는 내게 회사에서는 손해 보듯 일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그것이 결국엔 이득이란 말씀도 해 주셨다. 거듭된 회식으로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지자 문득 아빠는 회식에 대해 궁금해했고 회식비 각출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세상에 어떤 회사가 회식비를 직원한테 부담하게 하냐며 펄쩍 뛰듯 말씀하셨다.


회사에서 우리 조직에 부여한 임무는 품질 좋은 시제품을 적기에 제작하는 것이었고 팀에서 내게 준 업무는 그 시제품을 제작하기 위한 수많은 구성품 중 일부를 맡아 개발·공급되도록 구매와 설계 부문 틈에서 예산과 일정을 관리하는 일이다.


한참 일을 배워가던 중 4주간 진행되는 서비스센터 교육에도 참여해야 했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연구개발 업무에 참고하라는 취지였는데 현업부서에서 적응하느라 찌든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듯했다. 상당 시간을 소모품 교환하는 일을 보조하는데 보냈고 정비 기사님들이 요청하는 물건들을 나르며 다양한 고객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이곳에서 틈틈이 동기들과 회포를 풀 수 있어 좋았지만 현장의 먼지가 너무 많아 피부도 부쩍 안 좋아지고 냉각수나 폐오일을 가까이하다 보니 건강에도 유익해 보이지는 않아 오래 있을 곳은 못된다 여겼다.


교육 막바지에 이르자 소속 팀에서 내게 일을 인계하던 연구원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폐교로 1박 2일 동안 파트 워크샵을 갈 예정이니 빠짐없이 참석하라는 통보다. 자기들 멋대로 정해놓고 비용은 1/N 청구하면서 불참한다는 뜻을 비추기라도 하면 ‘요즘 젊은 애들은 참 이기적이다.’라는 뒷말이 나오기 십상이었기에 손톱의 검은 기름때가 채 벗겨지지 않은 손으로 기아 로체를 렌트하여 단숨에 서울부터 횡성까지 달렸다.


워크샵을 마치고 그룹의 한 선임연구원은 본격적으로 부울경 출장 계획을 짰다. 4박 5일 일정으로 예정됐는데 또다시 캐리어에 짐을 꾸려야 했다. 출장은 여러 협력사의 생산 현장을 방문해 공법과 공정에 대한 이해를 돕고 얼마 후에 있을 새 프로젝트를 위한 제품 개발 현황을 점검할 목적이었다. 아반떼를 소유한 연구원과 거기에 탑승할 선임연구원은 모두 운전면허 정지 상태라며 내게 운전대를 맡겼다. 출장 기간 내내 현장 점검과 회의를 이어갔고 매일 저녁은 술이 곁들여진 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는 몹시도 어울리지 않는 소주잔을 넘기는 것보다 밤늦게까지 2차, 3차 배 터지게 먹고 다음날 해장을 위해 새벽 6시까지 모여야 하는 일이 더 부담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신 프로젝트의 첫 시제품 결과물을 선보일 시간이다. 그룹 연구원들은 아침부터 부산하게 흰 천과 푸른 워셔액을 들고 반짝이도록 결과물을 닦았다. 그룹장을 비롯한 일부 선임 연구원들은 보고 자료와 시제품 품평 준비를 하느라 매우 날이 서있다. 그런 모습에 괜히 나까지 긴장하며 어느 정도 준비 작업을 일단락 짓고 품평장 구석에 서서 아침부터 흘린 땀을 식힐 무렵 센터장인 부사장을 비롯한 상무, 이사 무리들이 입장했다. 어수선했던 품평장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부사장이 움직이는 곳마다 손끝이 가리키는 부분마다 수많은 직원들이 멸치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느라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의 말을 경청하며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에 열심히 메모 중인 선임연구원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다. 학창 시절 주말 아침이면 KBS1에서는 《남북의 창》이 방송됐는데 그곳에서도 쟁반만 한 정모를 쓴 마르고 늙은 아저씨들이 독재자 곁에 가까이 서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준비하고 현장을 정리하기까지 두 시간은 훌쩍 흐른듯하다. 다들 고생했으니까 또 회식을 한단다. 회식비는 참석자에 한 해 1/N임은 회식 공지 메일 말미에 관용어구처럼 따라붙었다.


성공에 매우 목이 마른듯한 우리 그룹장은 회사 밖의 VIP를 위한 특수 프로젝트를 받아 들고 왔다. 자체 기술이 없어 독일의 한 전문 업체와 협업을 했는데 실물이 우리 팀에 들어오고부터는 그룹 내 선임연구원으로부터 당분간 귀가하지 말고 회사에 머무르라는 요청으로 포장된 지시를 받았다. 갈아입을 옷과 속옷, 수건도, 민감성 두피를 위한 샴푸도, 지복합성 피부를 위한 클렌징 폼과 스킨토너도 없는 사무실에서 마냥 머물라며 아무런 사전 통보나 계획 공유 없이 전격적으로 내려진 황당한 통보였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 점심 식사 후 통화하던 이대 나올 여자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온갖 짜증으로 가득하고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그녀의 태도에 이별에 대한 상실감이나 슬픔보다는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에 대한 분노 섞인 울화통이 먼저 터져 나왔다. 홧김에 그녀와 함께한 순간들과 나의 20대 초중반의 모습들이 가득 담긴 싸이월드를 탈퇴했다. 이렇게 내 이야기를 쓰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공급자 입장에서 소중한 자료가 소실돼 무척 아쉽다.


그때의 울화는 그녀와 함께 했던 장소나 길을 홀로 걸으며 점점 상실감으로 물들었고 MBC 《지붕 뚫고 하이킥》에 등장했던 서신애 배우를 보고 나서야 빼다 박은듯한 헤어진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몹시 아려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곰플레이어로 이 시트콤을 받아 보다가 멈추고 터져 나온 눈물을 닦았다.


연구원들은 밤새도록 기본적인 회사 업무 처리는 물론 VIP를 위한 프로젝트의 문제 해결을 위해 뭘 가져오라는 둥, 붙잡고 서서 작동이 될 때까지 계속 서 있으라는 둥 잔심부름에도 동원되었고 새벽 다섯 시는 되어서야 사무실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간간이 멀끔한 정장을 입은 VIP 측 사람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우리가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보직자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룹의 막내였지만 일이 매우 불합리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답답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여기저기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전화로 나 또한 몹시 지쳐갔으며 점차 냉소적인 태도로 회사 생활에 임하게 됐다.


그때는 전혀 몰랐는데, 우리 단체협약에는 labor union에 가입된 연구원이 이렇게 평일 심야근무 혹은 철야근무를 했을 때, 회사는 그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명기되어 있다. 우리 팀 연구원들은 며칠 밤을 무료로 회사에 봉사한 셈이다. 선배 연구원 중 한 명이 총대를 메고 회의 시간에 그룹장에게 요청했다.


“이기적인 태도입니다만... 연구원들 수당(철야, 휴일)은 챙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룹장은 마치 깜빡 놓쳤다는 듯 그의 의견을 수용했고 이렇게 인정된 수당은 11월에 이르니 기본급의 두 배에 육박하는 금액이 명세서에 찍히기도 했다.


이렇게 밤낮없이 회사에 머물던 어떤 금요일이었다. VIP를 위한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오전 9시가 안 된 시간에 결과물을 운송차량에 실어 보냈다. 팀장은 꽤 후련했는지 고생한 우리 그룹 연구원들에게 근태 인정을 해줄 테니 당장 집으로 가서 쉬라고 했다. 밤새 분비된 유분과 현장의 먼지가 뒤섞여 부쩍 무겁게 느껴지는 두피를 씻어내고 쉴 생각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연구원들을 멈춰 세워 그룹장이 급하게 회의 소집을 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번 VIP 프로젝트는 우리뿐만 아니라 독일 협력사 직원도 함께 고생했으니 같이 회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결론은 연구원들이 지금 연구소 밖으로 퇴근을 하더라도 수원 일대에 머무르다가 그룹장을 포함한 선임연구원들이 퇴근해서 도착하는 18시 무렵까지 정해진 회식장소로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이다.


거 너무 미친 짓 아닐까 생각했던 나는 더 미친 쪽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날 회식 불참은 물론 주어진 업무를 마치면 매일같이 정시 퇴근을 했다. 내부 고객인 선임연구원들의 업무 요청을 칼같이 피드백을 주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려다가 너무 외골수가 되는 것 같아 그룹장에게 먼저 가보겠다는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고 나왔다. 어떤 뒷말이 나오든 이런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나 핵인싸 따위는 되고 싶지는 않았다.


VIP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 중일 적에 첫사랑과의 이별로 인한 통증을 잊기 위해 생산적인 무언가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네일아트를 배워볼까 하다가 당시 즐겨보던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로 인해 문득 대세에서는 한참 벗어난 일본어를 배워보고 싶었다.


과외 사이트로 만나게 된 일본어 선생님은 나보다 세 살 어린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수업시간 두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히라가나보다는 그녀의 손짓, 눈썹의 움직임, 맑은 눈동자에 더 시선을 뺏겼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교제 중인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음흉한 내 마음을 꾸욱 누르고 두 시간만큼은 행복할 수 있었으니 그거면 됐다 싶었는데 갑자기 그녀로부터 일요일인데 뭐 하고 있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우리는 틈틈이 만났고 어느덧 나의 순수하지 않던 마음은 내 학습 욕을 집어삼킬 만큼 커져 일본어는 히라가나에서 멈추게 됐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더욱 기민하게 이동하기 위하여 생각에 없던 중고차를 구입하게 됐다. 웹사이트에서 기아 로체 차량을 매물로 보고 방문한 부천 오토프라자에는 덩치가 큰 아저씨 직원이 나를 응대했는데 내가 봤던 매물은 이미 거래가 되었고 ‘고객님에게 어울릴만한 매물이 하나 있긴 한데...’ 하며 말 끝을 흐렸다. 난 칼을 뽑았으므로 당장 그 물건을 보자고 했고 아저씨가 안내한 장소에는 쨍하게 빨간 투스카니 차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은 천만 원. 나는 그 차량이 무척 마음에 들었으나 현금이 전혀 없던 관계로 전액 고금리 대우캐피탈의 힘을 빌려 구입하게 됐다.


그렇게 빨강이를 끌고 분명히 애인을 사랑한다며 선을 긋는 그녀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 같아 매 순간 좌절하면서도 위태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이런 과정에서 몹시 나약하고 찌질한 민낯을 마주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심하게 자책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지금 이 모습은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정상적인 남녀의 만남은 아닌 것만 같아서 어느 날 충동적으로 여겨질 만큼 무 자르듯 관두게 되었다. 함부로 좋아하고 멋대로 끝낸 이기적인 태도에 미안함이 참 크다.


친구이자 회사 동료인 N 연구원과 동기인 P 연구원과도 부쩍 친분을 쌓았다. 연말이 다가오자 여러모로 탈진 상태였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그와 함께 도쿄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100엔당 1,250원을 상회하던 시기에 김포 공항을 떠나 하네다 공항에 내려 서울메트로보다는 100배 복잡해 보이는 도쿄 열차를 환승해 가며 신주쿠의 한 민박집에 도착했다.


그 집을 관리하는 일본인 할머님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행주로 정성스럽게 캐리어 바퀴를 닦아주며 방을 안내해 주셨다. 12월의 도쿄는 아주 춥지는 않아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주쿠 공원을 지나 유동인구가 아주 많은 신주쿠 거리를 배회했다. 발 닿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가부키초 골목에도 진입하게 됐는데 거리에는 독특한 차림의 갸루상들과 샤기컷에 기형적으로 밑위가 긴 바지엔 체인을 단 청년들로 북적였다. 샤기컷 남자 한 명이 꽤 유창한 한국어를 하며 우리에게 다가와 어딜 가서 술을 마시자거나 화려한 무대를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는 연신 “이이에~ 이이에~” 하며 정중히 거절을 했음에도 그의 영업행위는 더욱 집요해졌다. 이이에를 이십 번 정도 했을 때 샤기컷 청년이 포기한 듯 양팔을 벌리며 최후의 한 마디를 날렸다.


“아~ 형! 오늘 쿠리스마쑤잖아. 남자끼리 있을 고야?”


그 한마디에 우린 으슥하고 좁은 술집으로 들어가 갸루상 둘과 지나치게 비싼 위스키를 마시게 되었다. 그나마 P 연구원은 더듬더듬 일본어를 구사했는데 난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내 옆의 갸루상과 서로가 서툰 영어로 답답한 소통을 할 뿐이었다.


도쿄 여행 사진


그렇게 비싼 엔화를 한바탕 쓴 여행을 집에는 비밀로 했다. 엄마의 카드빚으로 입사하자마자 짊어진 대출금에 계속 언짢기도 했고 여전히 매일 같이 엄마의 돈 씀씀이로 바람 잘 날 없는 집에 굳이 내 수입과 소비행위에 대해 공유하기가 싫었다. 엄마는 2008년에 이어 요건에는 살짝 못 미쳤지만 중동 현대백화점 측의 도움으로 올해도 쟈스민 회원이 됐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당시 쟈스민 회원 조건이 연간 소비금액 기준 삼천오백만 원 정도였으니 아빠가 매일같이 고성으로 엄마와 다투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2009년 들어 내가 한 가지 잘했다고 여기는 일은 내 급여를 내가 관리했다는 점이다. 첫 월급을 수령했을 적에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너무나 소름 끼친다.


“너 월급 타면 처음 만져보는 큰돈이니까 엄마가 관리해 줄 테니 맡겨.”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2008, 무자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