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전쟁터였다

세 번째 이야기

by 숲속

누구나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삶에 보람을 느끼고 효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나에겐 왜 인생이 이토록 가치 없게 느껴지는 걸까.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삶이 의미 없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어서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작은 일이라도 하고 있을 때는 무가치함이 그래도 올라오지 않아 오히려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나았다. 휴일은 누구에게나 기대하는 날이었겠지만 나에게는 힘든 날이었다. 특히 명절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의 의미 없어 공허했고 그러다 명절에도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서적 부모화를 알았음에도 이 무가치함은 왜 계속 나를 찾아올까. 충분히 많이 울고 슬퍼했는데 아직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내 어린 시절까지 닿았다. 7살 무렵부터 의젓한 아이였는데 부모님께 그때부터 떼를 쓰지 않았다. 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그 아이는 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을까. 아 딱 한 번 있었다. 가족과 대형 마트를 갔던 날, 정말 마음에 드는 인형을 발견했다. 어린 나는 인형을 가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인형 주의를 빙빙 돌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예상대로 안 된다고 했고 나는 바로 포기했다. 그럼, 왜 요구하지 않고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가 됐을까.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매번 자주 싸우셨다. 아빠는 다혈질이어서 갑자기 화내곤 했고, 엄마도 참지 않기 때문에 맞받아쳐서 항상 크게 싸우곤 했다. 아빠가 화날 때의 모습은 매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분노할 때, 마치 짐승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처럼 화내는 사람을 살면서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도 아빠의 분노에는 한참 못 미쳤다. 나에겐 아빠는 시한폭탄과 같았고 그 폭탄에 엄마가 없어질까 항상 노심초사 걱정했던 것 같다. 한 7살쯤 엄마가 날개를 달고 집에서 떠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일어나 보니 엄마 무릎에서 너무 서럽게 울고 있었다. 다른 꿈은 기억도 안 나는데 이 꿈은 왜 선명할까. 아마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에 엄마가 떠날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어린 나는 엄마가 떠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엄마의 마음이 괜찮은지 항상 살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문제에 직면한다. 그때 걱정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누군가 바꿔주길 바라는 것보다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키를 잡고 움직이는 거다. 아마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걸 깨달았던 것 같다.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가족에게 기대하지 말고 이 가족의 인생을 구원하는 일은 내가 하기로 결심했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 백마 탄 왕자가 됐다. 그때부터 내면 속에 영웅 자아이자 부모 자아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아빠가 화났는지 살피고 엄마 마음이 괜찮은지 들어주고 동생들을 보살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다 보니 어른보다 어른이 되어 있었고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대체 불가능한 영웅이 됐다. 누군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모두 나에게 제보했고 나는 구원자처럼 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렇게 구원자를 자처했지만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가족들은 나를 봐주지 않았다. 보통 영웅은 많은 사람의 존경과 인정을 받지만, 나의 구원 행위에는 어떤 인정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 안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마음을 매일 살피고 열었지만 아무도 내 마음의 문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 내 마음의 집에는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살면서 가족에게 "너 마음은 어때? 괜찮아?"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마음의 집은 나도 찾지 않기로 했다.


누구도 나를 가치 있게 대하지 않았고 나도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런데 어떻게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없는 로봇처럼 할 일만 수행하며 수년을 살아왔더니 마음의 집은 거의 폐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무가치함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무가치하게 버려둬서 생긴 병이었다.



작은 상처


작은 상처가 아물어가는데 아쉬운 이유는 뭘까.

마음의 상처는 눈에 안 보이니 확인할 수도, 누구에게 증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몸의 상처는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으니, 본 사람은 알 수 있지 않나.

이 작은 상처가 없어지면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

그래서 아쉬운 거다.


상처의 치료 과정은 쓰리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그 과정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

작은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처럼 내 마음의 생채기도 얼른 아물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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