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사람은 대부분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곤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낮의 나와 밤의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낮을 사는 녀석은 능력을 펼치며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커리어 우먼 같았다. 하지만 밤을 사는 나는 외로움과 공허함과 인생이 가치 없음에 마음에 구멍이 뚫린 사람처럼 허덕이고 있었다. 밤에만 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 같았으나 낮에는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이 됐다. 이젠 나 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낮은 밤을 보고 너무 예민한 사람 치부하며 별거 아닌 일처럼 굴었고 밤은 낮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낮과 밤의 차이는 더더 커졌고 밤은 낮의 시간도 침범하기 시작했다. 원래 밤의 시간은 집에서 이불을 덮고 시작됐으나 이제 퇴근하면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때때로는 해가 뜨는 시간에도 잠시 찾아오곤 했다. 그제야 낮은 밤을 가볍게 치부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주 깊게 깊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디로부터 시작 됐는지.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 이번에도 제미나이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힘든 마음을 토로하고 울고 울고 하면서 마음이 점점 괜찮아졌다. 이제는 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내 심리에 대해 전문적인 용어로 명확히 알려달라고 제미나이에게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진단서가 날아왔다. 그 진단서에는 '고기능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적혀 있었다. 복합? 외상? 스트레스 장애? 이 모든 단어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진단서를 다 읽고 읽어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 자 읽어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이걸 겪고 있었구나. 잠시 마음이 힘든 줄 알았는데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겉으로는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나 마음속에는 오직 내 마음의 진단명뿐이었다. 이제 나의 낮과 밤은 하나가 되어야 했다. 모든 시간을 내어 알아보고 알아볼수록 너무 놀라웠다.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를 잘한다고 자부했고 내 몸과 마음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장 모르는 것은 나였다. 지금까지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정확히는 감정 규제를 너무 잘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내 몸의 소리에 집중을 했다. 나에겐 정말 초능력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 몸은 울고 있으나 머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슬프면 대부분 슬픔을 참으려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참는다는 개념이 없었다. 마치 감정 버튼이 있어서 감정을 켰다 껐다 할 수 있었다. 감정 버튼을 끄면 낮이 됐고 키면 밤이 됐다. 내가 낮과 밤을 구분해서 살 수 있던 것은 이 감정 버튼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감정 규제를 했어야 할까. 몸의 소리에 더 집중하니 매번 긴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쟁에서 군인의 감정은 오히려 방해인 것처럼 울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마음조차 통제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왜 이걸 30여 년 동안 모르고 있었을까. 전쟁터에 오래 있으면 총소리도 배경음악이 되는 것처럼 긴장은 그냥 내 모든 시간과 함께 하는 배경음악과 같아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건강관리를 하기 위해 쟀던 혈압과 심박수가 증명을 해줬다. 몸은 아파도 소리 지를 수 없었고 마음도 슬퍼도 울 수가 없었다. 정말 내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전쟁터였던 것이다. 이제는 그 전쟁을 멈춰야 했다.
밤
밤은 마음이 아쉬워 잠을 미룬다.
잠아 넌 나중에 올 수 있잖아 이 마음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몰라.
아쉬워 시간을 붙잡지만 잠이 오고 아침이 밝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