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는 아이 혼자였다

첫 번째 이야기

by 숲속

할 일을 모두 끝낸 저녁, 잠깐 시간이 나서 단추가 떨어진 옷이 생각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물은 정말 서툴러서 웃겼다. 어차피 옷 안쪽에 바느질은 보이지 않고 기능만 하면 되니까 하며 위안하고 있는데 문득 고등학교 때 한 장면이 머릿속을 침투했다. 고등학교 때 키가 커서 치마가 짧아졌는데 학교 규정상 치마를 늘려야 해서 엄마에게 바느질을 부탁했었다. 엄마는 귀찮은 듯 세탁소에 맡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좀 서운했지만 마음 토로하기엔 너무 사소하기도 해서 민망한 마음만 남았다. 이후에 세탁소에 맡겼지만 박음질이 겉으로 보이게 해 놓아서 고등학교 내내 치마의 박음질 자국이 거슬렸던 기억이 있다. 왜 그게 그렇게 거슬렸을까. 스스로 직접 꿰맨 서툰 바느질 속에서 답을 찾았다. 17살의 나는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쁘게 바느질된 치마가 아니라 서툴러도 엄마가 직접 해준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말 작은 것이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마음을 받지 못해 물건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호박죽이 좋았고 아빠가 학원에 데려다주는 게 좋았다. 호박죽과 자동차로 그 당시에 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고 가치 있다고 위안 삼았을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쯤 아빠의 벌이가 부족해서 엄마가 우유배달을 시작했었다. 방학이 되면 다들 늦잠을 자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우유배달을 자발적으로 도왔다. 엄마가 써준 동호수와 우유 이름을 확인하며 혼자서 어둡고 캄캄한 긴 복도를 지나 잘못 배달할까 봐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무서워도 무섭지 않은 척했고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무섭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더더 과거로 초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을 가는 길엔 떠돌이 개들이 있어서 무서워서 항상 길을 살피며 빠르게 뛰어갔었다. 어느 날 피아노 학원을 끝내고 집을 가고 있는데 말티즈만 한 강아지가 앞에 있었다. 주인도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두려워서 그 작은 강아지를 계속 주시했고 강아지도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강아지의 눈은 꼭 '너를 덮칠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젠 정말 덮칠 거 같아 옆에 보이는 공원을 가로질러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나를 쫓아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 짧은 다리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속도로 뛰기 시작했고 공원 끝에는 계단이 있어 빠르게 올랐다. 다행히 강아지는 계단까지는 올라오지 못하고 돌아갔다. 너무 무서웠지만 그 당시 나는 울지 않았다. 단지 작은 강아지에게 쫓긴 내가 부끄러워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7살 때부터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서워도 말할 수 없었고 힘들어도 부탁할 수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스스로 감당하고 이겨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학원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에게 쫓겼던 마음도 초등학교 4학년 새벽 어두운 아파트 복도에 있던 마음도 홀로 이겨내야 했다. 그럼에도 혼자서도 잘 해내고 이겨냈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에겐 혼자는 슬프고 외로울 것이다. 누구의 마음도 받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게 외로워 한 번씩 용기 내어 마음을 구해보았다. 하지만 구한 마음을 받지 못해서 바느질 자국이 남은 치마가 눈에 거슬리고 슬펐던 것이다.



시간 여행


문득 시간 여행은 갑자기 찾아오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로 가기도 하고 유치원을 다니는 아주 어린 시절로 가기도 한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아마 그때 두고 온 시절 때문에 그 시절의 아이가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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