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혼자 스스로 감당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은 힘들긴 하지만 무섭진 않았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존재가 살아지는 공포, 마음을 구해보고 표현해 봐도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존재가 없어지는 듯한 공포였다. 왜 마음을 적극 구해보지 못했을까. 엄마 통해 듣길 어렸을 때 어느 시기에 내가 "엄마 있잖아."를 반복하며 엄마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고 했다. 옆집 이모가 나를 보고 심리센터 보내봐야 하지 않냐라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맴돌면서 차마 하지 못한 그 아이의 이야기는 이제 알 수 없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나도 이야기하지 않아서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던 거 아닐까. 몇 번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이후에는 혹시나 불러서 돌아보지 않을까 무서웠고 무서워 차라리 부르지 않는 것을 택하지 않았을까. 감정은 마치 언어 같아서 말을 안 하다 보면 말하는 법을 잊게 되는 것처럼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니 감정을 전하는 법도 감정이 거기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됐다.
그렇게 나와 마음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마치 투명한 아이처럼.
3년 전인가. 명절이어서 온 가족이 할머니댁에 모이는 날이었다. 작은할아버지댁 가족들이 와서 인사를 하는데 사촌 여동생 보고 "네가 장녀잖아."라고 했다. 내가 장녀인데 말이다. 하필 그때 문 열고 인사하려고 그 자리에 있었다. 나가지 말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민망해 서로 하하 웃으며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정말 없어지고 싶었다. 이렇게 없는 사람이 된 경험은 사실 처음은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컴퓨터 선생님이라 아침 조회시간을 컴퓨터실에서 진행했다. 물론 타자 연습하라는 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게임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 타자 연습만 성실히 했다. 야속하게도 타자 점수는 노력과 달리 점수는 그대로였다. 타자 중간 평가 날이 다가왔다. 여전히 점수는 같았다. 선생님께서 타자 점수를 보시곤 타박하셨는데 억울했다. 다른 아이들은 게임하고 놀았고 나는 타자 연습만 했는데!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그 타박을 듣고만 있었다. 학부모 참관하는 날이었다. 엄마는 선생님께 다가가 내 이름을 이야기하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순간 너무 당황하셨다. 바로 내가 기억이 안 났던 것이다. 엄청 튀지도 않고 사고도 안쳐서 너무 조용히 있는 아이라 그랬다고 했다. 선생님을 원망할 수 없는 게 나에게도 내 존재감은 희미했다.
아이의 마음의 집은 부모님과 함께 지어간다. 그래서 대부분 그 집에는 부모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니 나를 아무도 못 보지.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지. 아이가 서 있긴 하지만 저 멀리서 보면 너무 작아 아마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일 거다. 그렇게 그냥 그곳에서 서 있었다. 아이가 춥게 혼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어른은 최소한 옷이라도 벗어줄 거다. 하지만 나에겐 내 마음에 말조차 걸어 주는 어른이 없었다. 누가 한 마디라도 걸어줬다면 그럼 그 아이는 울면서 온 마음을 다 내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거기 서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발견해서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줬다면 씩씩하게 혼자서도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스스로 재료를 가져오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혼자 저 세상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돌을 하나씩 가져왔다. 부족하지만 합창단을 나가보고 미술대회를 나가서 상을 타고 공부를 해서 원하는 성적을 만들고 그러면서 나 할 수 있는 사람이네 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집의 재료가 됐다. 내 재료는 투박한 돌이어서 그 돌로 쌓다 보니 형태는 삐뚤삐뚤하고 크지도 않고 바람이 새는 것 같아도 내 공간은 내가 만들었다. 그곳에서 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잠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은 어느 순간 생각보다 대단한 집이 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
투명아이는 마음도 보이지 않아
직접 마음에 색을 칠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알고 싶어 색을 골라 칠했다.
이 마음은 파란색. 이 마음은 빨간색.
이제 더 이상 아이는 투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