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스스로 부모가 됐다.

by 숲속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본가에 다 모이기로 해서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게 됐다. 집에 들어 선 순간 모든 공간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혼미할 정도로 물건은 너저분 했고 공간을 들어 선 순간 떠나고 싶었다. 그나마 괜찮은 공간인 침대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빨리 여행을 출발하는 시간이 오길 기다리며 잠을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여행의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집만 엉망인 게 아니었다. 차 안에서 가족들은 감정 쓰레기를 서로 던지고 던졌다. 눈앞에 쓰레기들을 보자니 머리가 아파 눈을 감았다. 마치 감당할 수 없는 소음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소음에 조금이라도 멀어지고자 음악 소리를 크게 틀었다. 그때 다시 체감하게 됐다. 아 맞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었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러고 어떻게 살았지?


엄마, 아빠는 감정 앞에서 미숙한 어른이었다. 아빠는 자기 분을 제어하지 못해 아무 감정이나 잡아다 엄마에게 던졌고 엄마도 참지 않았다. 서로 물건을 던진 적도 있어 집안이 처참하게 엉망이 된 적도 있다. 물건을 안 던질 때도 서로 감정을 잡아다 던지니 정서적으로 집은 항상 엉망이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갔았다.


아이는 부모에게 뭐든 잘한 게 있으면 가져다 자랑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였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고 엄마는 천진난만하게 자랑하는 아이 같았다. 항상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정말 어렸을 때 즐겁고 재미났던 기억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저래서 지금도 아이처럼 있을 수 있는 건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재밌었던 기억을 떠올리려 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 왜 즐거운 시절이 없었을까? 정리할 줄 몰라서 너저분한 집, 표현이 미성숙한 아빠, 아이처럼 이야기를 털어놓는 엄마, 그 두 분의 반복되는 다툼 속에 아이로 있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비어있는 부모님의 역할을 점점 메꾸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훈육하기 시작했고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엄마가 울면 달래주며 정서적 남편이 됐다. 아빠가 폭발하지 않을까 지켜보며 제동 장치를 걸었다. 부모는 아이를 방치한 것도 아니고 때리지도 않았다. 여느 평범한 부모 같았지만 나에게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나 미숙했고 오히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살아왔다. 할머니댁에 가면 항상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아빠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척 모임에서 아빠가 가족 대화에 잘 못 낀다는 것을 느꼈다. 아빠는 전혀 문제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깊게 대화하면 미숙해서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기엔 어려운 사람이었다. 아빠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마 화가 계속 쌓여 그 화를 가족에게 돌렸었다. 엄마는 모든 대화에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보통 부모는 자식 자랑을 많이 하지만 엄마 인생은 무조건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은 엄마는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면 그 주제의 주인공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걸 깨닫고는 그때부터는 들어주기만 했다. 부모 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우리 집은 겉으로 보면 평범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마음 누울 공간조차 없어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나를 나무 한그루로 심었다.


나는 가족에게 하나씩 필요한 것을 내어줬다.

그 나무는 엄마가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무였고

동생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나무이자 지켜주는 나무고

그리고 아빠를 지켜봐 주는 나무였다.


가족에게 스스로 내어주는 나무였다. 아마 우리 가족은 몰랐을 거다 그 필요가 어디서 나왔다는 것을 당연히 있는 것이라 풍경처럼 스며들어 그 나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


마음을 주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마음을 받는 사람이 잊어버리면 마음을 준 사람도 잊어버리게 된다. 이제는 그 선물을 기억하는 자가 없으니 텅텅 빈 마음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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