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깔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by 숲속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집은 그렇게 화목한 집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뉴스에 나올만한 집안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집에 속한다. 뉴스나 유튜브를 볼 때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지. 우리 엄마, 아빠 정도면 내 동생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평범한 집에서 괴롭고 괴로울까.

엄마랑 전화는 항상 괴로운 시간이다. 보통 전화하면 30분이상인데 그 이야기 속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질문이 올 때는 직장, 돈, 결혼 이야기였다. 아빠는 이제는 물건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빠랑 있는 시간은 나에게 곤욕이다. 아빠에게 나는 아직도 체면치레에 쓰는 도구다. 아빠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어김없이 내 비쳤다. 엄마 아빠도 힘들지만 가족 전체가 모이면 더 힘들고 친척이 다 모이면 상상만으로 버틸 수 없는 공간이 됐다. 이 모든 이유가 삶의 무의미함을 야기하고 살아가는 것조차 괴롭게 만들었다. 근데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엄마의 전화 때문에 아빠의 다혈질 때문에 우리 가족과 이 세상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고 누가 봐도 그냥 예민한 사람 아닌가.


그런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나에게 신세한탄을 자주 하곤 했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고 후회했다고 했다. 원래 이혼하고 싶었지만 나 때문에 못했다고, 그 이야기는 엄마 아빠 싸우고 난 후에 항상 등장하는 이야기라 여러번 들었었다.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있는데 주변 사람에게 불행이 생겨 과거로 돌아가서 해결하려고 한다.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다른 불행이 찾아와 몇번이고 다시 돌렸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 여러 결말이 있는데 그 중 감독판 엔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태아때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죽음을 선택했다. 그 후 주인공은 존재하지만 모든 인물들이 행복을 찾는다. 그 영화는 꼭 내 마음 같았다. 엄마의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주인공같은 능력이 있어서 엄마가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빠는 너무 미숙한 사람이라 그 마음이 보였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불쌍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성인이 되어서 더 불쌍한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는 부모에게 사랑도 형제 우애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마 아빠는 제대로 된 우정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마음이 쓰였고 그 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이미 보였다. 아마 나는 아빠보다 이 세상에서 아빠 마음을 가장 잘아는 사람 일 거다.


마음에 무게가 있다면 나는 정말 많은 무게를 지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 아빠의 마음, 동생들의 마음, 그 마음은 나에게 가족들이 주기도 했지만 그냥 내 스스로 짊어진 무게도 있었다. 가족들의 마음이 적힌 종이를 내 머리 위에 스스로 쌓았다. 엄마의 후회스러운 마음, 아빠의 외로운 마음, 동생들의 마음까지 그렇게 쌓아 왔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한장씩 한장씩 모이다보니 내 머리 위에 빌딩만한 높이의 종이가 쌓였다. 쌓다보니 너무 무거워 이제는 이 종이 빌딩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말할 수 없었다.


종이로 사람이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


종이는 아주 가볍지만 한장 한장 모이게 되면 그 무게는 코끼리 무게만큼 무거워진다. 그렇더라도 코끼리에 깔려 죽었다는게 믿어지지 종이에 깔려 죽은 사람이 있다면 누가 믿을까. 누구도 못믿을 거 같았고 나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높이 쌓였을까. 생각해보면 내 머리 위에 쌓인 종이들을 가족에게 던져버린 적이 없었다. 한번도. 가족들이 쌓았음에도 가족들에게 던져버릴 수 없었다. 이 무게가 너무 힘들어 시도한 적은 있었다. "사실 내 마음은..." 하지만 내가 던진 종이 2,3장에도 가족들이 죽을 것 같아서 던질 수 없었다. 그리고 견디고 견뎠다. 수천장 수만장 종이를 이고 말이다.


하지만 대신 그래도 능력이 생겼다. 쌓인 수천장 수만장 종이만큼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며 그 종이를 내 머리 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았다. 아직 몇장 안되지만 이 글은 하나의 기록이 되고 내 마음의 책이 될 것이다.



마음이 고픈 아이


아이는 마음이 고파

어떤 마음이든 받아서 쌓았다.

차곡차곡

너무 많이 쌓아

내 마음은 이제 보이지 않네

작가의 이전글아이는 스스로 부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