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색사(測色士)의 노트

by 슈펭 Super Peng


바람은 미래의 색을 가늠하듯 불어왔다. 나뭇잎은 그것을 허락한다.

자신의 표면을 미세하게 튜닝하며. 흔들림은 소리가 아니라, 무수한 명멸(明滅)이다.

빛과 그림자가, 얇은 막 위에서 초당 천 번씩 자리를 교환하는 예술.


가족은 창가에, 시간의 볼륨을 낮춘 채 각자의 정지된 채널을 응시한다.

우리는 서로를 읽지 않는다. 다만, 공간의 밀도를 함께 짊어지고 있을 뿐이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너무나 선명하여 오류(誤謬)처럼 느껴지는 기억의 유화(油畫).

아이의 웃음은, 잎이 떨어지는 순간 중력을 잠시 무효화(無效化)시키는 장치.

그 파동이 공기를 거슬러 아버지의 피로한 관절에 금빛 윤활유처럼 스며든다.

가을은 경험의 스펙트럼을 분해한다. 모든 감각은 개별적 모듈로 흩어지고 나는 오직,

눈꺼풀 안에서 미발표된 형상이 꿈틀대는 것을 본다.

우리의 집은, 저 떨리는 잎맥이 그려낸 영원히 닫히지 않는 괄호(括弧)이다.

그 안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가족이라는 최초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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