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증발한 수증기처럼,
공간은 눅진하고 나의 등은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의미 없이 식어간다.
이 시간은 폐 속에 채워지지 않는 아무도 묻지 않는 자리.
무력하게 지켜보는 시간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은,
검고 푸른 무늬만 남은 액정일 뿐.
세상을 가르는 것은 수천 번의 침묵이 빚은,
깨지지 않는 얼음.
어른들의 시선은 오랜 세월 동안 녹지 않고 호흡이 불가능한 투명한 한파(寒波)의 진동이다.
그 관조는 피부와 사물 사이의 얇은 틈,
경계를 따라 흘러,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하얗게 질린 곰팡이처럼 번져간다.
날카로운 비명 없이,
나는 온몸의 부피를 잃고 숨 쉴 수 없는 곳에서 얼음이 속으로 응고하는,
그 무중력의 소리만이 남는다.
나는 기댈 곳 없이,
땅에 닿지 못한 채 서 있다.
다리는 무너진 탑처럼 통증을 기억한다.
쉬지 못한 지 오래된 통증. 세상이 뱉어낸 가장 시작(始作)이 없는 모퉁이에.
발밑의 흙은 유실된 시간의 온기를 기억하는 스펀지처럼 딱딱하다.
몸 전체는 스스로에게 부서지기 위해 만들어진 투명한 조각.
끊임없는 피로가 본래 닿을 수 없는 각도에서,
모서리부터 아주 미세하게 마모되고 있다.
달력의 종이는 얇고,
매일 같은 페이지를 넘기지만 내일은 결국 얼음 표면을 덮은,
과거의 숨결로 만들어진 회색 공기방울.
미래는 지독한 흰색으로 영원히 미완성인 빈칸이며,
나의 그림자는 목마름 그 자체가 되어 저 혼자 타오른 새.
어둠 속으로 무거운 짐이 풀린 듯이 마지막 존재의 부피를 퍼덕이며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