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풀이 썩은 흙냄새를 뱉다

by 슈펭 Super Peng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혹은 아주 가까이에서. 모두가 수군거린다. 변했다고, 나라는 이름의, 고요히 흐르던 강물이.


한때, 햇살 아래 투명하게 비치던 옹달샘이 어느새 첫겨울, 잎을 버린 차가운 앙상한 가지의 결을 가졌다고.

이젠 영영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고, 익명의 그림자들이 읊조렸지. 항상 평화로운 수면을 가졌던 내 눈동자가 깊은 밤, 젖은 동굴처럼 침묵 속에 낯설게 번져 간다고.


죽이고 싶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핏속에 깃들어서인지, 나는 스스로의 가장 오래된 숲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순했던 뿌리마저도 이 야만(野蠻)의 산맥에서는 오래전부터 감추어야 할 상처였으므로.

더 빠르게 썩어 들어가고 싶었지, 씨앗처럼. 사랑하면 서로의 그림자가 된다는 그 비겁한 약조(約條)에 기대어. 이 어둠의 늪 속에서 그들의 마른 흔적과 한 줌의 재로라도 섞여지고 싶었을까.


안으로 삭이던 분노가 돌아와 나의 혈관을 따라 흐르는 강물이 되었다. '나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의 발길. 그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세상의 저물녘은 답하지 않았지.

나라는 섬(島)을 잃었다. 달빛조차 없는 밤바다의 차가운 수면 아래 눈을 감아도 나는 수초처럼 흔들리고 밤새도록 부서지는 파도처럼 헤매인다.


평생 마시지 않던, 독주(毒酒)의 쓴 뿌리가 이젠 목마른 대지처럼 고파온다. 조바심에 닳아 새벽비가 쏟아지는 자갈길 위를 홀로 짐승의 발자국처럼 비틀거리며.

좋은 풀만 자라던 입술의 밭에서 숨을 내쉬면 썩은 흙냄새 같은 욕설이 터진다.

이 작은 불티가 산을 태우는 불길이 되기 전에는 나는 이 밤의 물결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은 가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 처럼 화려하고, 결국 사랑이라는 가장 깨끗한 물줄기 아래 모든 것을 흐리게 하고 말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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