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직 나만이 나를 완성해』
"극적인 변화는 환상이다. 평범한 반복이 진짜 혁명이다."
6개월 전의 나는 매일 밤 다짐했다.
"내일은 다를 거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운동하고, 책 읽고, 건강하게 먹고, 생산적으로 일하고, 일찍 자고. 유튜브에서 본 성공한 사람들처럼. 인스타그램에서 본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들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끄고 다시 잤다.
눈을 떠보니 10시. 후회가 밀려왔다. '아, 또 이러네.' 하루가 이미 망한 것 같았다. 망한 김에 유튜브나 보자. 점심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밤이 되면 또 다짐했다. "내일은 진짜 다를 거야."
이 사이클이 몇 달간 반복됐다.
결심 → 실패 → 자책 → 다시 결심 → 다시 실패 → 더 심한 자책.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왜 이것도 못 하지? 알람 하나 못 지키면서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 정도 의지력도 없으면서 뭘 이루겠다는 거야?'
밤마다 다짐하고, 아침마다 실패하고, 낮 동안 자책하는 루프. 그 루프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됐다. '어차피 내일도 못 일어날 거야. 어차피 나는 안 돼.'
그러다 어느 날, 무너졌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날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알람은 진작에 꺼졌고, 햇살이 방 안에 가득했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뭘 해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일어나.'
그게 무기력증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 바닥에서, 나는 포기했다.
극적인 변화를 포기했다. 완벽한 아침 루틴을 포기했다. 새벽 5시 기상을 포기했다. 새로운 나를 포기했다. 성공한 사람들처럼 되겠다는 환상을 포기했다.
그냥 인정했다.
'나는 새벽 5시에 못 일어나. 그건 나한테 안 맞아. 억지로 하면 3일도 못 가. 그리고 그건 실패가 아니야. 나한테 맞지 않는 방법일 뿐이야.'
그리고 아주 작은 것 하나만 하기로 했다.
"일어나면 물 한 잔 마시자."
그것뿐이었다.
몇 시에 일어나든 상관없다. 알람을 못 지켜도 상관없다. 그냥 눈을 뜨면, 일어나서, 물 한 잔만 마시자.
그것만.
웃기지 않은가. 물 한 잔. 그게 뭐라고. 그런 걸로 뭐가 바뀌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창한 계획은 다 실패했으니까. 이제 남은 건 바닥밖에 없었으니까.
물 한 잔부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물 한 잔을 마시니까, 화장실에 가야 했다. 화장실에 가니까, 어차피 일어난 김에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니까, 거울을 봤다. 거울을 보니까, '오늘 뭐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처음에는.
하지만 그 '전부'가 이전과 달랐다.
예전에는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했다. "오늘 5시에 일어나서 명상 30분, 운동 1시간, 독서 1시간..." 그리고 하나라도 못 하면 다 실패한 것 같았다. 완벽주의의 덫.
이번에는 달랐다. 물 한 잔만 마시면 성공이었다. 그 뒤에 뭘 하든 보너스였다. 세수하면 보너스. 스트레칭하면 보너스. 아무것도 안 해도, 물 한 잔은 마셨으니까 오늘의 목표는 달성.
이 작은 성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물 마셨다." "나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무너져 있던 자기 신뢰가 조금씩 회복됐다.
2주가 지났다. 물 한 잔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하나 더 추가했다. "물 마시고 5분 스트레칭." 5분. 딱 5분만.
한 달이 지났다. "물 + 스트레칭 + 10분 글쓰기."
두 달이 지났다. 세 달이 지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있었다. 밤에는 책을 읽고 있었다. 6개월 전에 꿈꿨던 그 모습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드라마틱한 깨달음도 없었다. 영화 같은 몬타주도 없었다. 그냥 매일 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시시한 아침이 쌓였을 뿐이다.
그 시시함이 나를 구했다.
인간의 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극적인 이야기를. 영웅이 시련을 겪고, 바닥을 치고, 극적으로 반전하는 서사. 신데렐라가 재 속에서 무도회로, 록키가 패배자에서 챔피언으로.
우리는 자기 인생에도 그런 서사를 기대한다.
"언젠가 극적인 순간이 올 거야. 모든 게 확 바뀌는 그런 순간이."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욕망을 정확히 파고든다. "100일 만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단 3주 만에 40kg 감량." 썸네일의 Before/After 사진. 충격적인 변화.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신경과학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인간의 뇌는 미래의 보상을 현재의 고통보다 훨씬 작게 평가한다. 이를 '시간 할인(temporal discounting)'이라고 부른다.
지금 당장의 작은 쾌락이 미래의 큰 보상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지금 유튜브 보는 게 6개월 후의 성장보다 당장은 더 좋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고통'을 피하고 '미래의 극적인 변화'를 꿈꾼다. 지금은 편하게 살고, 언젠가 갑자기 확 바뀌길 기대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할게. 나도 그랬다.
'언젠가 갑자기 의지력이 생기겠지.' '언젠가 갑자기 동기부여가 확 되겠지.' '언젠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겠지.'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10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오는 건 항상 '오늘'뿐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내일도 비슷할 오늘.
'루틴'이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는가.
틀에 박힘. 기계적인 삶. 지루함. 재미없음. 창의성의 반대. 감옥.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난 루틴대로 사는 거 싫어.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래서 매일을 즉흥적으로 살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계획 없이, 루틴 없이, 흘러가는 대로. 그게 자유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면 뭘 했는지 모르겠었다. 분명히 바쁘게 움직였는데, 남는 게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었다.
'자유롭게' 살았는데, 결과는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안다.
그건 자유가 아니었다. 혼란이었다.
선택지가 무한할 때, 우리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압도당한다. 매 순간 "뭘 해야 하지?"를 결정해야 하는 피로. 그 피로가 쌓이면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그게 내 20대 대부분이었다.
역설적으로 들릴 것이다.
루틴이 자유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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