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온도

by 슈펭 Super Peng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우리는 꽃이 피는 날을 봄이 시작된 날이라고 기억하지만, 사실 봄은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땅속에서, 뿌리 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의 분열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오고 있었다.


기다림도 그런 것 같다.


씨앗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씨앗을 땅에 묻으면, 당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흙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변화도 없고, 신호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 그냥 흙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시간은 가장 치열한 시간이다.

씨앗은 땅속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세포벽을 팽창시키고, 배아를 깨우고, 뿌리를 아래로 내리기 시작한다. 식물학에서는 이것을 ’ 발아(Germination)’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방향을 정하는 과정.

뿌리는 항상 싹보다 먼저다.


위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아래로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곳을 먼저 단단하게 만들고 나서야 세상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가 누군가의 성장을 보게 되는 건 항상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후다. 그 전의 시간,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던 시간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본인조차도.


겨울은 죽음이 아니다

지질학적으로 땅은 겨울에도 살아있다.

지표면은 얼어있어도, 땅속 일정 깊이 아래는 연중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지하수가 흐르고, 미생물이 활동하고, 유기물이 분해되고, 다음 봄을 위한 양분이 축적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겨울은 정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땅은 멈추지 않는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겨울에 잎을 떨구는 건 포기가 아니다. 낙엽수는 겨울 동안 광합성을 멈추고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봄을 위한 준비를 한다. 가지 끝 작은 눈(芽) 속에 이미 꽃과 잎의 설계도가 담겨있다. 겨울 내내 그 눈은 단단하게 닫혀있지만, 안에서는 세포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가장 깊이 준비하는 시간일 수 있다.

인간에게도 그런 겨울이 있다. 아무것도 안 되는 것 같은 시간. 노력은 하는데 결과가 없는 시간. 밖에서 보면 멈춰있는 것 같은데, 사실 그 사람 안에서는 무언가 단단해지고 있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을 자꾸 낭비라고 부른다.

근데 낭비가 아닐 수 있다. 그냥 아직 땅 위로 올라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

꽃봉오리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터지기 직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색이 보이고, 향이 스미기 시작하고, 형태가 갖춰졌는데 아직 열리지 않은 그 순간. 팽팽하게 모든 것을 안에 담고 있는 그 순간. 식물생리학에서는 꽃이 피는 것을 ’ 개화(Anthesis)’라고 하는데, 개화는 단순한 팽창이 아니다.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고 수분을 흡수하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지는 과정이다. 꽃은 스스로의 힘으로 열린다. 아무도 대신 열어줄 수 없다.

기다림에도 그 순간이 있다. 다 됐는데 아직 안 된 것 같은 순간. 이제 곧인데 이제 곧이 안 오는 것 같은 순간. 그 순간이 사실 가장 가득 찬 순간이다. 비어있는 게 아니라, 터지기 직전으로 가득 찬 것이다.


너무 뜨거우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얼어버린다

씨앗에는 발아에 최적화된 온도가 있다.

대부분의 씨앗은 15도에서 25도 사이에서 가장 잘 발아한다. 너무 차가우면 세포 활동이 멈추고, 너무 뜨거우면 단백질이 변성되어 싹이 트기도 전에 죽는다. 기다림에도 온도가 있다는 걸 식물은 알고 있다.

인간의 기다림도 온도가 있다.

너무 조급하면 타버린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매일 흙을 파헤쳐 씨앗을 꺼내보는 사람은 씨앗을 죽인다. 행동심리학에서 ’ 과잉 모니터링(Hypermonitoring)’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목표를 향한 과도한 점검이 오히려 수행을 방해한다는 개념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매일 몸무게를 재는 사람이 오히려 더 조급해지고 포기가 빠른 것처럼. 지켜보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고 너무 차가워도 안 된다.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면 씨앗은 얼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때가 오기만 기다리는 것 그것도 기다림이 아니다.

적당한 온도. 조급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그 온도. 씨앗을 믿고, 물을 주고, 햇볕을 조절하면서

그러나 결과를 강요하지 않는 그 온도. 그게 기다림의 온도다.


뿌리를 내리면서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의 역설이 있다.

기다리기만 하면 꽃이 피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으면 더더욱 피지 않는다. 씨앗은 기다리면서 동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다림이 수동적 멈춤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움직임이라는 것.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 현존재(Dasein)’라고 불렀다. 지금 여기 던져진 존재. 우리는 결과를 선택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기다림의 질을 결정한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에 취약하다. 전두엽 피질은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를 만들어내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 욕구가 좌절되면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불안 반응이 시작된다. 기다림이 고통스러운 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 문제다. 우리는 원래 기다림에 약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뇌는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이 버티는 힘은 ‘의미’에서 온다고 했다. 지금 이 기다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때, 뇌는 불확실성을 다르게 처리한다. 기다림이 방황이 아니라 과정이 될 때.


보이지 않는 성장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성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뿌리가 그렇다. 나무의 뿌리는 지상의 가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넓이로 뻗어있다.

우리가 보는 나무는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땅속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반이, 눈에 보이는 절반을 지탱한다.


인문학적으로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장자는 말했다. “큰 나무가 되려면 먼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썼다. “위대한 완성은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 된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사실 완성으로 가는 과정일 수 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 잠재적 발달(Latent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서 축적되고 있는 역량. 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 수개월 동안 언어를 듣고 내면에서 처리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폭발적으로 말문이 트이는 순간 이전에,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너무 자주 의심한다.


열매는 꽃이 지고 나서야 온다

꽃이 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꽃은 아름답지만, 식물에게 꽃은 수단이다. 수분을 받기 위한, 열매를 맺기 위한. 그리고 꽃은 반드시 진다. 지지 않으면 열매가 올 수 없다. 꽃이 지는 것을 실패로 보는 것은, 과정의 일부를 전체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무언가 빛났다가 사그라드는 시간이 있다. 잘 됐다가 안 되는 시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시간. 그것을 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 열매를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철학자 헤겔은 변증법적 발전을 이야기했다. 정(正)이 있고, 반(反)이 있고, 그 충돌을 통해 합(合)이 나온다. 성장은 직선이 아니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올라가고, 내려오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기다림의 끝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 닿는 것이다.


기다리는 줄 몰랐던 기다림

나중에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 그 시간이 기다림이었다는 걸. 그때 그 멈춤이 준비였다는 걸.

그때 그 고통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었다는 걸.

신경과학에서 ’ 후향적 의미 부여(Retrospective Meaning-Making)’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뇌는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때는 낭비처럼 보였던 시간이, 나중에는 가장 필요했던 시간으로 보이는 이유다.

문제는 그 시간 안에 있을 때는 모른다는 것이다.

씨앗도 자신이 나무가 될 줄 모른다. 그냥 뿌리를 내리고, 수분을 흡수하고, 세포를 분열시킬 뿐이다.

나무가 된 다음에도 씨앗이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줄 모르고,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뿌리를 내리는 줄 모르고, 그냥 버티는 것. 꽃이 필 줄 모르고, 그냥 살아있는 것.


기다림에는 온도가 있다.

너무 뜨거우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얼어버린다. 조급함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씨앗을 믿고, 오늘의 물을 주고, 결과를 강요하지 않는 온도.

그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다림의 전부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싹이 트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핀다.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살아있었기 때문에.


봄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냥, 오고 있었던 것이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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