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밤이 되어 눕는다. 내일도 비슷할 것이다. 모레도. 그 다음 날도.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그 일 년들이 모여서 내 삶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내가 의식하든 못하든. 멈춰달라고 해도.
당연한 사실인데, 오늘따라 그것이 낯설다.
만약 내 삶이 정확히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 질문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거창한 것들을 떠올렸다. 가보지 못한 곳, 하지 못한 경험, 이루지 못한 꿈.
그러나 며칠을 품고 있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정말 그만두어야 할 것은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까'에 가까웠다.
완벽해지려는 강박.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는 습관.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미루는 태도.
손에 잡히는 것을 그만두기는 쉽다. 마음에 뿌리내린 것을 그만두기는 어렵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이 문장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배우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글,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말.
그것들은 언제나 '지금은 아니야'라는 서랍 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유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시간은 빈 공간이 생기면 다른 것들로 채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사실상 '아마 영원히 하지 않을 것'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
그저 불완전한 지금이 계속될 뿐이다.
후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해서 하는 후회.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
나는 어느 쪽을 더 두려워하는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행동한 것의 후회가 더 날카롭다. 실패의 고통, 창피함, 손실. 그것은 즉각적이고 선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양상이 바뀐다. 행동의 후회는 희석되지만, 가능성의 후회는 자라난다. "그때 했더라면"이라는 문장은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끝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가 기록한 가장 흔한 후회.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 용기를 냈더라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못한 후회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 후회였다.
최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빠져든 적이 언제인가.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칙센트미하이는 그 상태를 '몰입'이라 불렀다. 시간이 사라지고, 자아가 사라지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경험. 그는 수십 년을 연구한 끝에 말했다. 행복은 쾌락의 축적이 아니라, 이런 순간들이 모여 이루는 삶의 질이라고.
나는 언제 시간을 잊었던가.
글을 쓸 때.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누군가와 말이 아닌 것을 나눌 때.
그 순간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소박했다. 하지만 그 안에 충만함이 있었다. 존재의 밀도 같은 것.
우리가 무엇에 몰입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의 지표다. 우리가 무엇에 몰입하지 못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의 지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memento mori를 말했다. 죽음을 기억하라.
음울한 말 같지만, 의도는 정반대였다. 유한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무한처럼 흘려보내던 시간이 무게를 갖는다. 세네카가 말했듯, 삶이 짧은 게 아니다. 우리가 삶을 짧게 만드는 것이다.
하이데거도 비슷한 말을 했다.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그들'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일상에 매몰되어 남들처럼 살아가던 존재가, 끝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고.
결국 삶의 방향이란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그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 흐름 속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늘도 저물어가는구나.
내일이면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똑같은 하루. 혹은 조금 다른 하루. 그것은 내가 정한다.
무한처럼 주어진 듯 보이는 시간 속에서, 유한함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은 당신의 방향으로 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