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해 받는 세상에서 찾는 집,
션 베이커가 던지는 질문

by 이러꿍

2000년, <포 레터 워즈>로 데뷔해 <탠저린>(2015)의 선댄스 영화제 초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감독 ‘션 베이커’는 영화에서 줄곧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포르노 업계 종사자, 트랜스젠더, 미혼모. 자칫 잘못 다뤘다가 논란이 될 수도 있을 법한 주제를 그는 누구도 옹호하지 않은 채로 풀어낸다. 션 베이커 감독은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 공간 설정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미혼모와 그의 아이가 처한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디즈니 랜드 바로 옆 모텔에 투숙시키거나, 은퇴한 포르노 배우의 알량한 꿈을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LA에 위치시키는 것처럼. 등장 인물들의 상태와 정반대를 상징하는 곳에 그들을 데려다 놓음으로써, 관객은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로부터 오는 아이러니를 곱씹게 된다.


션 베이커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이 실질적인 홈리스 상태라는 점이다. <스타렛>(2012)부터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레드 로켓>(2021)까지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렇다 할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 어딘가에 얹혀 살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속해 있을 뿐이다. 필자가 이런 영화의 인물들에게 공통으로 느꼈던 것은 바로 집이 없는 자의 비애였다. 그들은 어찌저찌 몸을 뉠 공간을 구했을지 몰라도, 결코 그 ‘집’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IMG_9067.JPG

션 베이커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미혼모 핼리 (브리아 비나이트)와 그의 딸 무니 (브루클린 프린스)는 디즈니랜드 옆 ‘매직 캐슬’이라는 모텔에서 단기 투숙을 겨우 연장하며 살아간다. 핼리의 구인 노력은 빈번히 거절 당하고, 더이상 형편이 되지 않자 핼리는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녀는 투숙 비용을 내기 위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디즈니랜드 입장권으로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매춘 행위를 하게 된다. 핼리는 무니가 화장실에 있을 때, 화장실 바로 옆 방에서 매춘 행위를 한다.

영화는 핼리와 성관계를 하던 남성이 무니가 있는 화장실에 무심코 들어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카메라는 마치 관객 모두가 무니와 함께 있는 듯 낮은 시선으로 진행된다. 관객은 그 순간 모두가 아이가 되어 불쾌함을 공감한다. 따듯한 아이의 공간에 차갑고 더러운 어른들의 세계가 스며든 것이다. 인형의 머리를 빗겨주던 무니는 움츠러들었다.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맘 편히 몸을 씻을 수도 없는, 그게 바로 무니가 처한 상황이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이렇게 공간을 침해당하는 이미지를 여럿 제시한다. 핼리와 무니는 끊임 없이 세상으로부터 쫓겨난다.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핼리는 아동 보호국의 조치로 인해 무니와 격리되고, 그것을 원치 않았던 무니는 친구의 손을 잡고 모텔 옆에 위치한 디즈니랜드로 달려간다.

마지막에야 무니는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공간으로 달려나간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전긍긍하면서도 결국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던 그들은 실질적인 홈리스였다. 이렇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마지막까지 도피처를 찾아 헤매는 모녀의 이야기로 생활의 필수 요건인 집조차도 발악을 하며 얻어내야 하는 빈곤층의 삶을 그려냈다.


IMG_3435.jpg

2021년 개봉한 장편 영화 <레드 로켓>은 은퇴한 포르노 배우 마이키 (사이먼 렉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버스 안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흔들리는 버스와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무언가를 태우는 듯한 연기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마이키의 삶을 간접적으로 은유한다. 마이키가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그의 전 부인 렉시 (브리 엘로드)의 집이다. 렉시는 마이키를 보자마자 욕을 내뱉고, 그들은 한참 렉시의 집 앞에서 실랑이를 한다. 홈리스인 마이키는 지낼 곳을 얻기 위해 렉시에게 겨우 빌어 그녀의 집에 빌붙는다.

전 부인의 집에 빌붙어 지내던 마이키는 근처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스트로베리 (수잔나 손)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는 점점 스트로베리를 향한 성적인 욕망을 내비치며 그녀를 포르노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가고, 허황된 희망에 사로잡힌 채 마이키의 욕심은 계속해서 좌절된다. 결국 마이키는 팬티 바람으로 렉시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그는 텍사스에서 LA로, LA에서 텍사스로 와 다시 쫓겨나듯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그에겐 그 어디도 집이 아니다. 마이키는 자신만의 할리우드인 포르노그래피 사업으로 돌아가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건 집을 가지지 못한 자의 비애이다.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여기 저기를 떠돌며 도넛처럼 달콤한 과거의 영광에 취해 거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그는 결국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을까.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거주란 인간 실존의 근본적 출발점이고, 주택은 그 물리적 토대이다.’라는 말을 했다. 단순히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사유와 세상과의 관계 맺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이 바로 집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가 살던 당시의 시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로 규정했다. 사회 수준이 점점 발전하며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었다.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진정한 휴식의 공간으로서 ‘집’을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션 베이커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