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남편과 함께 달린 일요일 아침

by 밤하늘별셋

미라클러닝을 시작하고 첫 일요일을 맞이했다.

평소라면 교회에 가기 위해 마지못해 눈을 떴을 텐데, 오늘은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췄다.

토요일까지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러닝 할 수 있는 날은 일요일 아침뿐이기에, 오늘은 남편을 깨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혼자 나갈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그는 순순히 따라나섰다.


전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새벽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다이소에서 산 폼롤러와 마사지 도구들로 열심히 마사지를 했더니 무겁던 다리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아이싱 덕분인지 무릎 통증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엔 약속이 있어 '어쩌다러닝' 모임엔 참석하지 못하지만, 대신 아침에 5km는 꼭 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주에 바빠서 남편과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천천히 뛰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남편과 이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3km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남편의 운동은 늘 내 잔소리의 단골소재였다. 그는 운동엔 영 취미가 없었다. 결혼 18년 동안 남편이 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나는 다행히 수영을 좋아하게 되어 2년 넘게 꾸준히 수영을 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아직 ‘좋아하는 운동’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교회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예배 후 공원으로 소풍을 간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농구를 하는 그 자리에서, 나는 남편이 처음으로 뛰는 모습을 봤다. 충청도 양반다운 느긋한 성격의 남편은 평소엔 절대로 뛰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가 농구를 하는 모습을 나는 꽤나 낯설고 신기하게 쳐다봤다.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에는 30대 초반부터 늘 빠지지 않던 단어가 있었다.
‘대사증후군, 운동 요망, 체중 감량.’

검진검진 결과가 나올 때마다 건강염려증인 내 잔소리는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는 늘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운동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아서 하는 걸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사람은, 시간이 많아져도 안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도 남편은 여유가 생겨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핸드폰을 보며 지난겨울을 보냈다. 나는 별별 방법을 다 써봤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했다. 좋아하는 운동이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수영이라도 같이 해보자며 개인강습을 붙여주고, 새벽에 줄 서서 단체강습반에도 넣어봤다. 하지만 몇 달을 못 채우고 결국 그만두었다. 그럼 탁구는 어떨까 싶어 함께 강습에 참여했는데, 이번엔 내가 소질이 없었다. 공을 제대로 못 쳐서 상대방에게 미안하고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결국 남편만 보냈는데 다행히 그는 탁구를 재미있어했고, 가지고 있던 탁구채도 있어서 큰돈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퇴근이 늦어 강습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몇 번 빠지다 보니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으로 찾은 것이 바로 ‘러닝’이었다.


우리는 올해로 결혼한 지 19년 차 부부다.
결혼 3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세 쌍둥이를 낳았고, 나는 독박육아에 가까운 육아를 하며 자존감이 무너졌고, 우울증도 겪었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직, 요식업 창업과 실패를 겪으며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부부 사이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40대 초반의 일이었다.

나는 자꾸만 남편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고, 남편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등을 돌리고 잠들곤 했다.
지금은 남편도 나도 재취업에 성공을 했고 이제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미라클 러닝을 하며 남편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그가 점심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때운다는 말에 화를 낸 적이 있다. 사실 그 짜증은 남편을 향한 게 아니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도시락을 싸는데 그리 큰 수고를 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국이나 찌개 하나에 계란프라이 두 개, 반찬 한두 가지 정도일 뿐이다. 단출하지만 편의점 도시락보다는 나을 것이다. 6시 30분, 남편의 출근 시간. 도시락을 건네며 도시락 값은 뽀뽀로 받는다.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한 발씩 앞으로 가다 보면 50대에는 조금 더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미라클러닝으로 달라질 우리 사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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