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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명 Apr 19. 2024

피아노, 옛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다>

  악기는 참 신기하다. 기타 하나로도 음악이 된다. 모든 악기들이 각각의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합쳐질 때의 화음은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답다. 그 화음을 뚫고 임영웅의 목소리가 콘서트 장 안에 울려 펴지면 그 곳이 바로 천국이다. 임영웅 콘서트를 보고 또 보러 가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러 악기가 내는 화음 위의 소리 보다 기타 선율 하나 피아노 소리 하나에 울려 퍼질 때 더 감동을 준다.     


  특히 임영웅 1집 앨범 중 아버지라는 노래는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의 소리가 압권이다. 그의 노래를 핑계 삼아 나의 피아노의 일화를 기록해본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미술이 너무 배우고 싶었던 나는 여자는 피아노를 쳐야한다는 엄마를 따라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학원 정 중앙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그 피아노는 너무 커서 감히 앞에 서기도 두려웠다.      


  조그만 방으로 구역이 나눠져 있었고 각 방에는 피아노가 한 개씩 있었다. 선생님과 나는 그 중 한방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좁아 답답함을 느꼈지만 자리에 앉아 악보를 보고 연습을 했다. 5~10분정도 선생님이 악보와 방법을 알려주면 혼자서 20분정도 같은 곡을 연습하고 검사를 맡고 수업은 끝이 난다. 며칠 이 반복된 연주를 하다보면 한 곡이 완성된다. 집에 가서 부모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 특히 엄마는 뿌듯하게 바라보곤 칭찬을 해줬다. 그 당시 우리 집 거실 한 중앙에 있었던 피아노. 엄마는 피아노 소리를 참 좋아하셨다.      


  그 당시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도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녔다. 언니는 나보다 항상 빠르고 뭐든지 똑 부러졌다. 피아노가 마냥 재미있는지 나와 달리 진도가 빠르게 나갔다. 언니와 나이차는 2살이지만 엄마는 뭐든 빠르면 좋을 거라 생각했었다. 나 또래 학생들보다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그 때문에 학교생활을 79년생들과 함께 하면서 느린 아이가 되었다. 친구와 생년월일이 1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느린 아이가 아니었는데 또래보다 모든 것이 뒤쳐졌다.       


  피아노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추천으로 피아노 대회를 신청했다. 대회를 나가면 드레스도 입고 트로피도 준다며 드레스 입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언니와 나는 대회 연습을 위해 주말도 쉬지 않고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그때가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준비를 하던 중 난로 앞에 모여 앉아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고학년 언니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학원에서 나는 “아니야. 진짜 산타는 있어” 라고 고집을 피웠다. 매번 크리스마스 날 내 머리위로 과자봉지를 둔건 산타가 아니고 누구였던가?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지만 창문을 통해 진짜 산타가 선물을 두고 간 건 아닐까 상상했다.

     

  크리스마스 날 자는 척 하고 산타를 기다렸다. 조용히 살금살금 아빠가 들어와 침대 옆에 과자상자를 두고 갔다. 언니들의 말이 맞았다. 그 날 엄마와 아빠가 산타였다고 자백하셨고 피아노 학원에서 말 한 산타이야기는 사실이 되었다. 아직도 언니와 산타추억을 이야기 하면서 웃는다. 언니는 그 당시 나보다 2살이 더 많았는데 그때까지도 산타를 믿었다니.......생각했던 것만큼 똑똑하지 않았는가보다.      


  대회에서 언니는 금상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엄마는 늘 이사 때 마다 피아노를 함께 가져갔다. 처음에 거실 한 중간에 차지했던 피아노는 점점 작은방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사가 반복이 되고 피아노도 소리가 맞지 않고 세월이 지나 제 할 일을 잃어 버렸다. 애물단지가 된 피아노가 집 밖으로 나가던 날, 엄마는 마음이 헛헛하셨는지 두 여자아이가 예쁘게 피아노 치던 옛 모습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영웅의 아버지라는 노래를 듣자마자 그토록 다니기 싫어했던 피아노 학원을 스스로 찾아갔다. 30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야속한 세월이여! 선생님은 나의 실력을 보시더니 처음부터 <아버지> 노래는 칠 수 없단다. 아이들이 배우는 동요로 3주 정도 연습을 했다. 그 후 쉬운 버전의 임영웅의 노래 <우리들의 블루스>를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었다.       


  크기만 했던 학원 중앙의 그랜드 피아노는 내 앞에 어느 순간 딱 맞는 크기가 되어있었고 어렸을 땐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그 피아노 앞에서 지금 연주를 하고 있다. 아버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은 늘 도망가, 무지개, 런던 보이 등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배우고 내 손으로 연습했다. 확실히 쉬운 버전보다 어려운 버전이 연습하기 고되지만 건반이 내는 화음은 아름답기만 하다.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연습할 땐 잘되지만 함께 화음을 맞출 땐 좌뇌 우뇌가 따로 움직이는 듯 하다. 손도 따라주지 않는다. 한 번 더 야속한 세월이여!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과 달리 어른이 되어 다시 내발로 찾아가 앉으니 마음 가짐부터 다르다. 집에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했다. 임영웅의 노래라 더 열정을 가지고 열심이었다. 피아노는 참 정직한 악기이다. 연습을 한 만큼 좋아지는 걸 바로 들으니 연습할 기분이 났다. 왜 어렸을 때는 몰랐을까?      


  트로트는 대부분 쿵짝 쿵짝 리듬에 맞춰 치기 쉬운 곡 인 듯 하지만 상당히 까다롭다. 쉴 때 쉬고 박자를 잘 맞춰야 흔히 말하는 트로트의 맛을 살리게 연주를 할 수 있다. 연주도 마찬가지다. 쉴 때 쉬고 끊어줄 때 끊어주고 이어 갈 때는 이어가야 맛깔난 연주가 된다. 그냥 피아노를 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맛을 살려가며 치기까지가 어렵다. 요즘은 손이 아니라 악보를 보는 눈이 오히려 침침하다. 어린 아이들처럼 머리와 손의 움직임도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 세월이 주는 아쉬움에 슬퍼하기도 하지만 또 세월이 주는 지혜에 고맙기도 한 요즘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다녔던 피아노 학원, 그때 배운 것들이 살면서 기억에서 흐릿해졌지만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니 옛 기억에 웃음 지어보는 순간이 생겼다. 추억의 연주곡 <엘리제를 위하여>도 다시 배웠다. 손이 기억하는 것이 신기했다. 종이 위에 콩나물 같았던 음들이 하나의 소리를 이루고, 내 손으로 음을 연주하니 음악이 된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야 알았다. 새삼 나를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다 준 엄마에게 감사했다.


   KTX수서역 안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있다. 그 피아노에 우연히 앉은 척 앉아 멋지게 사람들 앞에서 임영웅의 곡을 연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더 큰 꿈을 가져본다.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어 그의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해 함께 무대를 이끌어 갈지도. 꿈은 크게 가져야한다. 그래야 다시 도전 할 용기가 생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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