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소리, 특히 여름이 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뚜르르, 맴맴, 스르륵, 타닥타닥, 자연이 주는 소리는 그 자체로 신비롭다.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이 끝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투명한 눈물이 되어 반짝인다. 그해 8월의 긴 장마 끄트머리에 나는 걷고 있다. 이미 6천보를 넘어섰다. 약속된 할당량이 다 채워져 간다. 집으로 들어가려는 아파트 정자 앞에서 내 귓가에 다음 플레이 리스트인 음악이 울려 퍼진다. 소리는 공명이 되어 내 귓가에 맺힌다.
이런 날이 있지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내 곁에 있구나. 네가 나의 빛이구나.
(중략)
멀리도 와주었다 나의 사랑아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임영웅 플레이 리스트 중 ‘걷고 싶다’ 노래가 휴대폰에서 울려 나왔다. 그의 나지막한 감성적인 목소리가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했다. 나뭇잎 끝에 맺힌 이슬에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반사 되어 나의 귀에 돌아오니 그 울림이란 가히 감동 그 자체였다. 마지막 소절은 특히나 압권이다.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임영웅과 손을 잡고 걷는 기분, 그의 손이 나에게 닿는 느낌을 상상하며 나의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내 왼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걷고싶다 노래를 더 듣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동네 주변 하천을 계속해서 걸었다. 같은 노래가 휴대폰 스피커로 들렸다. 신랑은 이어폰으로 듣지 않고 스피커로 노래를 들으니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한다. 아니 남들도 이 좋은 노래를 많이 들어야한다면서 나는 자신 있게 임영웅 노래는 크게 틀어놓고 걷는다. 그럼 마치 그가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처럼 즐겁다. 만보가 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날 처음으로 만보걷기를 성공했다.
선천적으로 발목이 약해 중학교 때는 한의원을 오가며 매일 침을 맞았다. 20대에는 연골의 문제로 무릎수술을 했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고 빠지지 않았던 살. 요가, 필라테스, 헬스, 테니스, 수영, 하물며 점핑이라는 운동을 하려고 트램폴린까지 집에 들였다. 자리만 차지해 중고로 다시 팔아버렸다.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해봤지만 나와 맞질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냥 걷자 였다. 걷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 2,3천보를 걷다보니 당일은 다리가 뻐근, 다음날은 다리가 아프기 까지 했다. ‘문제가 있어, 병이 재발한 것이야.’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약 먹으면서 운동하셔야 합니다. 안하시면 안 됩니다.”
운동을 해야 하는 운명이란다. 무슨 이런 운명이 다 있는가?
어느 날 인천에서 지인이 연락이 왔다. 건강을 위해 만보 걷기를 시작하려는데 매일 인증을 하자고 하셨다. 하루에 나의 걸음수를 따져보니 대략 2천에서 3천보 정도다. 5천보 이상을 걸은 날은 너무 피곤해 저녁에는 아무것도 못했다. ‘만보? 너무 많은데? 할 수 있을까?’ 힘든 도전이라 거절했지만 끈질긴 지인 덕에 6천보로 합의를 보고 인증을 시작했다. 작심삼일이 반복되면 습관이 형성된다고 했던가. 3일만 해보자고 다짐했다.
나는 학원을 운영한다. 학원선생님들이 대게 그렇듯 앉아서 아이들을 가리키는 시간이 많다. 공간의 이동도 거의 없다. 그러니 건강을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운동할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일도 늦게 마쳐 야식도 자주 먹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면 일 년 뒤 면 몸무게가 늘고 배가 나오고 건강이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런 생활을 몇 년간 해오니 몸은 몸대로 힘들고 근력이 형성되지 않아 매일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런 사람이 나만이 아닌가보다. 5명의 원장님들이 함께 했다. 2022년 그 해 6월 말, 나의 6천보 걷기 도전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6천보를 일상생활에서 걷고자 했다. 걸음 수에 집착하면서 가까운 거리도 일부러 둘러서 갔다. 6천보를 채우다보니 만보가 욕심이 났지만 그 걸음수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패한 날에도 다른 제재는 없었다. 누군가 만보를 성공하면 박수쳐주고 ‘좋아요’ 스티커로 카톡방은 도배가 되었다. 나는 걷고 싶다 노래와 함께 처음 만보걷기를 성공하고 박수와 응원을 받았다. 그 후 임영웅 노래는 나의 좋은 걷기 동반자였다. 그 덕분인지 나의 6천보 걷기 도전은 2만보가 넘을 때 도 있었다. 무리한 다음날도 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받았다. 우리 몸이 회복기가 있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걸어서 근육을 풀어야 한단다. 참 신기한 몸이다. 서로 걷기에 대한 응원과 정보로 카톡방은 늘 활기찼다.
‘항상 걷던 이 길을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뛰면 어떨까?’
단조로운 걷기생활에 지쳐간 어느 날이었다. ‘뛰어볼까?’라는 새로운 도전이 심장을 설레게 했다. ‘그래 내일부터는 한번 뛰어 보는 거야!’ 다음날 500미터 채 못 뛰었다. 어떻게 쉬지 않고 뛸까?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전사는 42,195km를 뛰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죽기는 싫은데 마라톤은 하고 싶었다. ‘연습하면 되겠지, 뭐라도 될 거야’ 달리기 시작했다. 연습시, 러너블과 런데이와 같은 어플들을 활용했다. 마라톤 대회들도 검색을 해보니 매 주말마다 여기 저기 각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걷기 카톡방에는 이미 왕년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원장님들도 계셨다. “내가 왕년에 10킬로를 달렸어. 하프도 했었지.” 하며 추억담을 공유해주셨다.
풀코스, 내 이번 인생에 꼭 한번 마지막 해보고 싶었다. 일단 고민하는 순간 나는 실행에 옮긴다. 고민만하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걸 살아오면서 알기에 일단 저지르고 본다. ‘고민은 짧게 행동은 바로’ 이것이 나의 인생모토이다. 때 마침 9월에 열리는 올림픽 데이 런 마라톤 대회 접수가 시작되었다. 5km부터 시작, 그 킬로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도 모르고 일단 접수를 했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9월이지만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 마지막 더위를 모두 주고 가나보다. 뛰려고 하니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1킬로 뛰기도 너무 힘들었다. 걷뛰 걷뛰(걷고 뛰기의 줄임말)를 반복했다. 5킬로를 걷뛰 하니 6천보가 조금 넘었다. 6천보는 늘 걷던 거리라 할 수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킬로수가 늘려 3킬로를 쉬지 않고 뛰었다. 대회 날, 내 인생 처음 마라톤 대회에서 5킬로를 37분 55초에 완주하고 첫 메달을 목에 걸고 나는 초보 마라토너가 되었다.
지금까지 하프코스까지 도전을 하고 10km를 올 초에 59분30초로 완주, 현재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을 준비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풀코스를 완주해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 있을까? 나도 그 중 한명이 되고 싶다. 마라톤은 참 정직한 운동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에서 바로 나타나니깐. 경쟁하지 않아 더 좋다. 나 자신과의 싸움만 할 뿐이다. 올 가을, 잘 싸워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다시 뛰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