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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갔다.

by 이효명

엄마는 주방, 화장실 청소에 이어 배란다 틈 청소를 하셨다. 2층에 살아 배란다 틈 사이에는 먼지가 가득이다. 먼지뿐만 아니라 위아래에서 떨어지는 먼지, 집 앞 모과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 비가 온 터라 빗물에 먼지가 굳어지기도 했다. 틈은 더 이상 본연의 색을 잊어버린 채 검게 변했다. 물티슈로 닦아도 봤지만 그때뿐 포기하고 사는 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지나간 자리는 마법처럼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베란다를 보고 또 등짝 한대 맞는 거 아닌가 겁났다. 딸 집에 놀러와 좀 쉬라 했다. 쉴 수 없다며 냉장고를 열어 청소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출근할게." 하며 집을 나섰다. 토요일은 1시까지 근무시간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진짜 등짝을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평상시 냉장고는 정말 청소를 안 했던 곳 중 하나다. 출근하기 전 냉장고가 살려달라며 신호를 보내는 건지 기뻐서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삐삐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귀를 닫고 얼른 도망쳐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냉장고부터 열어 보여주는 엄마, "와, 대박."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앞으로 청소 잘하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토요일 오후, 엄마와 함께 커피숍이라도 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딸 집에 와 청소만 하다 보낼 수는 없었다. 갑자기 엄마가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예전 잠시 아이 때문에 6개월 정도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저녁 5시, 약속 시간이 참 애매하게 잡혔다. 토요일은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손기정 마라톤 대회를 갈 것인가, 대회를 포기하고 엄마와 함께 인근 교외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인가 고민했다. 결국 나는 대회장으로 향했다.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말했다. "같이 갔다 오너라." 남편은 엄마의 부탁으로 마라톤 대회에 동행해 줬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뛸까 말까 고민했었다. 어쩌다 보니 출발신호와 동시에 출발했다. 결국 10km까지 달리다 남은 하프코스를 포기하고 혼자 뛰는 사람들 틈에서 터덜터덜 걸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주변은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으로 동화 속 같았다. 엄마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결승점까지 약 3km를 걸어들어갔다.

남편이 동행해 줘서 다행이었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털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엄마는 무리해서 운동하는 딸이 걱정이 되었는지 몸조심하라는 말을 무심히 던지고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봤다. 자고 일어나 컨디션을 회복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하루를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단풍 구경도 가고 서울의 가을을 함께 보고 싶었는데. 처음엔 상암경기장에 엄마와 함께 가려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며 엄마는 거절했다. 내가 마라톤을 포기했어야 했는데... 결과가 이럴 줄도 모르고 괜스레 엄마에게 미안했다. 저녁식사는 맛있는 것으로 대접하고 싶었다. 동네 자주 가는 돼지갈빗집에서 맥주 한 병, 갈비와 냉면, 된장찌개를 먹고 돌아왔다.

다음 날, 일정이 있다며 엄마는 서둘러 월요일 아침 기차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냉동실 청소하다 남은 미처 먹지 못한 냉동식품들로 엄마의 여행 가방은 가득 찼다. 오래된 거라며 버려라 해도 다 먹을 수 있다며 가방 구석구석에 넣었다.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줘야 할 가방인데 딸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손녀에게 주라고 용돈도 챙겨준다. 기차표 끊어줬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나는 빈손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용돈이라도 챙겨드려야 했는데 말이다.

월요일 아침, 탁구와 수필 수업 일정이 있어 엄마를 역까지 바래다 주지 못했다. 엄마는 서울 지하철이 무섭다며 전날부터 걱정이었다.

"내가 한 번에 서울역 가는 지하철역 앞에 세워줄 테니, 거기서 지하철 타고 가서 서울역에 내려. 여행 가방 끌고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면 기차역 나온다."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집 근처 4호선 지하철역에 모셔다드리고 서울역까지 엄마를 홀로 보냈다. 탁구 수업하기 전 스포츠센터 안에 위치한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엄마에게 잘 가고 있냐며 카톡을 남겼다. 긍정의 확답을 듣고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또 제대로 서울역에 내려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탁구 수업 시간은 다가오는데 엄마가 지하철에서 내린 건지, 짐은 다 챙겼는지 계속 걱정되어 결국 커피숍에 앉아 카톡으로 어디쯤이냐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업 듣지 말고 서울역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건데...... 생각이 짧았다. 엄마와 조금 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마음이 더 편할 수 있었는데...... 엄마도 더 기뻐할 텐데...... 기차 타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후회할 행동을 또 해버렸다.

다행히 엄마는 지하철 안에서 여행 가방을 끌고가는 일본인 가족을 만났다. 한국어에 서툴다는 그들을 따라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의 하루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 편히 시작되었다.

"서울에 놀러 한번 와, 좋은 곳 많이 알아놨어."

엄마는 정말 놀러 왔다. 나는 엄마와 함께 좋은 곳, 가고 싶은 곳, 많았다. 결론은 가지 못했다. 엄마는 딸 집에서 청소만 하다 갔다.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엄마의 말이 메아리친다. 하지만 원래상태로 돌아가려는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집안은 다시 더러워진다. 메아리치던 엄마의 말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더 잘해드릴 걸 하는 마음. 항상 옆에 있을 때 잘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자식의 마음인가 보다.

늘 한없이 베풀어만 주는 부모, 늘 후회만 하는 자식, 그것이 부모 자식 간의 사이인가 보다.

다음에는 엄마, 내가 서울역까지 꼭 바래다주고 바래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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