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나에게 준 것

by 이효명


*80킬로였다.
고 3 때 최고 몸무게 85킬로까지 갔었다. 그때 이후로 오래간만에 보는 몸무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느 날 그렇게 되어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들었다. 무기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때는 몰랐다.
식도염약을 달고 살았다. 밥 먹고 나면 속이 안 좋았고, 매 달 내과를 가 약을 타왔다. 의사 선생님과도 친해졌다. 그는 식도염과 위염이라고 늘 같은 약을 처방해 줬다. 몸이 보내는 신호였는데, 그냥 신호를 덮어두고 무시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이어트를 했다. 80킬로에서는 조금만 뛰어도 무릎이 아프다. 근데 병원에서는 약 먹어 가면서 운동을 하란다. 그냥 조금씩 걸었다. 진짜 10분이라도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다였다.

*2년 후, 62킬로
극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근데 2년이 지나니 몸무게는 62킬로가 되어 있었다. 달리는 거리도 시간도 늘었다.
식이요법을 딱히 한건 아니다. 굶은 것도 아니고,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한약의 도움은 조금 받았다. 나중에는 중독되는 거 같아 끊고 달리기에 전념했다. 매일 10분씩 뛰다 보니 어느 날은 그 이상이 되고 어느 순간 내 몸은 달라졌다. 몸이 천천히 바뀌는 게 느껴졌다. 옷이 헐렁해지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이 반가웠다. 그 힘든 새벽기상도 뛰기 위해서 한다.

식도염약도 어느 순간부터 안 먹게 됐다. 딱히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병원을 가니 의사 선생님이 놀랐다.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오히려 걱정이었다. 매일 내 몸을 보니 나는 못 느끼겠는데 오래간만에 보는 의사 선생님이 바로 알아차리는 걸 보니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은 67킬로다. 겨울에 안 뛰면 다시 찐다. 이것도 현실이다. 근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시 뛰고 있고 매일 뛰고 있으니깐.

또 달리기가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감정조절을 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살다 보면 남편이 잔소리하는 날, 아이가 유독 힘들게 하는 그런 날이 있다. 달리기 전엔 그런 날 술을 마셨다. 딱히 풀 방법이 없었다. 술을 마신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상낙원을 얻은 듯 편했다.

지금은 뛰고 온다.

뛰고 나면 신기하게 풀린다.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뛰고 나면 단순해진다. 남편 잔소리도, 아이가 힘들게 한 것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작아진다. 그걸로 충분하다.
뛰고 나서 씻으면 개운하다. 땀 흘리고 씻고 나오면 몸도 머리도 리셋되는 느낌이다. 그 느낌 때문에 또 뛰게 된다. 그리고 마시는 맥주 한잔은 그냥 소파에 누워 있다가 마시는 맥주와는 다르다. 내 몸에 덜 미안하다. 오늘 뛰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는 느낌. 그게 생각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완벽한 건강인이 된 게 아니다. 여전히 겨울엔 살이 찌고, 여전히 맥주를 마신다. 근데 예전이랑 다른 게 하나 있다. 내 몸을 움직이고 있다.
달리기가 나한테 준 게 바로 생활의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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