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이 전하는 인생 철학을 담은 책 [질서 너머]
나는 선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악과 반대되는 좁은 길에서 시금석들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2030 남성들의 지적영웅"
필자가 조던 피터슨 교수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피터슨 교수의 저서인 [인생의 12가지 법칙]을 소개하는 책의 띠지에서 본 것 같은 문구로 기억한다. 정확히 어디서 본 것인지에 대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를 일컫는 수많은 수식어와 문장들 중 위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2016년 캐나다 의회가 통과시켜려고 한 'Bill C-16' 법률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는 영상이 퍼지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 후 그의 저서 [인생의 12가지 법칙]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었으며 한국에서도 피터슨 열풍이 불었었다. 필자는 그 책을 군대에서 부대마다 배포해주는 국방 진중문고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우울증과 삶에 대한 무기력함, 자살충동, 군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괴로워하던 필자에게 일종의 해독제와 같은 조언을 전해준 책으로 필자에게 큰 힘이 된 책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고 2021년, 군을 전역한지 1년 넘게 지난 후 서점의 베스트셀러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피터슨 교수의 차기 저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질서 너머]였다. 군 복무 시절의 그 감명을 잊을 수 없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책을 집어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항우울제 중독으로 인해 코마 상태에 빠져 몇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병상에서 일어나 쓴 책이라고 한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강조했던 그가 깊은 혼돈을 헤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교훈과 이야기들을 가져올지에 대해 굉장히 기대를 하고 봤다. 정독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만 추려서 따로 문서화 할 정도로 몰두해서 읽었으며 온전히 머리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해서 읽었었다. 덕분에 다 읽는 데에 좀 오래 결렸지만, 그 후 필자의 삶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 글을 올렸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은 후, [질서 너머]를 접하자 신앙과 종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필자의 삶의 형태에 확신이 섰으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질서 너머]를 다 읽고 난 뒤, 리뷰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자료를 좀 뒤지다가 그를 향한 비판글을 통해 피터슨 교수를 향한 비판의 여론이 있다는 것을 새삼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대단한 책 리뷰를 쓸 만큼 유명한 지식인도 아니고 인문학이나 철학에 일가견이 있지도 않아서, 그 블로그 포스팅에 어떠한 반박이나 비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여태 매우 편향된 시각으로 피터슨 교수의 주장과 그의 저서를 접해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로 인해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이 좀 더 명확해졌다.
피터슨 교수는 임상 심리학자이지, 철학자나 인류학자 또는 사회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슨 새삼스럽게 당연한 말을 하느냐?" 하실 수 있는데, 그렇기에 중요한 사실이다. 그의 주장은 개인의 책임과 같은 내부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외부 문제에 관해서는 좀 납득이 어렵거나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세세한 철학적 부분이라던지, 진화생물학을 통한 논리적 전개라던지 말이다. 피터슨 교수에 대한 비판글을 보기 전까지는 그러한 점에 대해 확실하게 눈치채지 못한 채, 그의 철학적 사상이나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책 [질서 너머]는 피터슨 교수의 명성 만큼이나 고평가 될 만한 그의 견해나 특별한 담론이 따로 적힌 책이 아니다. 오히려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단순한 것이어서 식상하고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의 업적에 특별한 뭔가 있는게 아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성경, 창세신화와 같은 고대 서사시나 신화에 공통적으로 녹아있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체계에 의거한 피터슨 교수의 개인적인 인생담론을 서술한 책이다.
그의 개인적인 인생에 대한 생각과 고민, 그리고 주관적 해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만 그 담론의 근거가 되는 것들이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일명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성경과 같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인류의 지혜가 한 층 한층 쌓여 집대성 된 공통된 가치체계를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견해를 조금 얹힌 것이 끝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매우 보수적이고 매우 보편적이며 매우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까놓고 얘기해서 정론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게 끝이다.
다만 그 인류 보편적인 가치체계가 매우 가치 있는 내용이며 그것에 의거한 삶의 방식이 결코 헛되지 않기에 그에 대해 정리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상황에 봉착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는거지?"
이에 대해 피터슨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삶은 고통이다. 인간의 본성은 연약하고 악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른걸 제쳐두고 사는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은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삶에 있어 매우 실용적이면서 본질적인 질문은 다름아닌 다음과 같은 것이리라.
어떻게 삶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가?
설마 고통을 계속해서 방치만 하려는 마조히스트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고통을 회피하던 합리화하던 덮어버리던 정면돌파하던 간에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과연 모범 답안이 존재하는가? 어디서, 누구한테 본받아야 하는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피터슨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일명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에서 찾았다. 사람들은 어려서나 다 큰 어른이거나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우솝이화, 전래동화 등등. 다들 어렸을 적에 피노키오,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같은 이야기에 심취하여 그들의 행동이나 대사, 복장을 따라하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역할극을 하는 등 모방행위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피터슨 교수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형태가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방법론부터 시작해서 도덕관념이나 최고선 같은 것들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교훈이 되는 중요한 이야기들은 고대로부터 잊혀지지 않고 공통되거나 매우 유사한 이야기 틀을 통해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성경, 메소포타미아의 창세신화, 이집트의 창세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 신화를 통해 세계 구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을 무대라고 생각한다면 총 일곱 가지 등장인물과 배경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경험들의 요소들을 시적 은유로 표현해보겠다.
혼돈의 용이 거주하는 영역이 밤하늘이라고 상상해보자. 맑은 날 머리 위에 무한히 펼쳐진 밤하늘은 우리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상징한다. 해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혼자만의 생각과 상상에 빠진다. 그런 뒤 바다로 주의를 돌린다. 바다는 별이 빛나느 우주처럼 당대하지만, 비교해서 말하자면 만질 수 있고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다는 자연이며, 잠재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바다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질서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바다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따른다. 상어, 해파리, 격랑, 태풍 등등.
당신이 서있는 해변은 어느 섬의 외곽이다. 그 섬은 문화다. 거기에 사람들이 산다. 어쩌면 자애로운 통치자 밑에서 조화롭고 편하게 살 수 있고, 압제와 굶주림과 약탈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지옥 같은 상태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문화다. 문화는 지혜로운 왕일 수도 권위주의적인 폭군일 수도 있다. 악의 여왕과 자비의 여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한 인생에 잘 적응할 수 잇는 균형잡힌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인물 모두와 친해져야 한다. 지혜로운 왕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사회구조의 결함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부당함과 불필요한 고통을 보지 못한다. 반대로 권위적인 폭군을 너무 주장하다 보면, 잘 부서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묶어주고 혼돈으로부터 보호해주며 무질서를 막아주는 이 구조들을 고마워하지 않게 된다.
-본문 P 380~381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만 생각해봐도 대응되는 등장인물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문화라는 질서를 바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비로움 그리고 잔혹함을 교훈 삼아 혼돈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인간의 요소에 대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은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수많은 신화와 영웅 서사시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혼돈과 심연을 마주할 용기를 갖추고 위업을 이루려는 책임을 지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영웅)이다. 설렁 그것이 그대에 지옥을 선사할 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짓되거나 게으름, 꼼수를 부리면 (적대자)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너무 추상적인 표현만 했으므로 이번엔 실제 상황에 대입해보자. 우리는 아름답기도 한 한편 추위, 더위, 맹수, 배고픔, 목마름, 질병 등의 잔혹한 자연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약속을 통해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현 사회의 제도들이다. 우리 개개인은 좋든 싫든 잘 살든 못 살든 간에 한 사회에 태어나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살다가 한 번씩은 꼭 크나큰 문제에 휩싸인다. 그것이 운이 나쁘던 자신이 자초한 것이던 말이다. 만약 여기서 우리는 거짓된 태도로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는 오만함을 가진다면 우리는 자연의 혹독함에, 개인의 악의에 삼켜져서 더욱 더 커진 문제를 맞이하거나 수렁에 빠지게 된다. 한편 일을 정직하게 해결해보이겠다는 책임감을 지고 고통을 감내한다면 오히려 회피나 기만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최종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엄습해왔던 고통과 혼돈이 행복과 질서로 바뀌어 자연의 축복과 주변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후자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질서 너머의 혼돈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어느 정도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피터슨 교수는 우리들에게 영웅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현재 제도와 질서에 감사하면서 그것을 발판 삼아 앞에 닥쳐온 위기와 문제들을 책임을 지고 감사의 자세로 해결해나갈 것. 그렇게 해서 본인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지는 위업을 이룰 것. 그것은 고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과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세에 두 가지 의문점이 들 것이다.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거기에 의무나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삶이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움에 느끼는 분개심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우선 첫 번째에 대한 대답은 본 책 챕터 9장에서 알 수 있다. 성경의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피터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좋든 나쁘든 서양에서 가장 근원적인 차원의 이야기들은 성경 문헌에 있다.
(...)
하나님은 그분 자신, 그분의 창조 행위, 최초의 창조물을 보여준 직후에(따라서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된 거의 직후에) 인간을 창조한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즉시성 외에도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인간이 모든 것을 다스리게 했다는 점이다.
둘째,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점이다.
셋째, 창조한 인간이 다른 창조물처럼 보시기에 좋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묘사된 대로라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과 중요한 것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인간이 신과 유사한 운명, 불가피성, 또는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떤 잠재성을 실현하기 위해 신이 사용하는 도구는 말씀, 곧 진리의 말이다. 하지만 말씀이 있으려면 모든 두려움이 잠재해 있는 미지의 가능성과 대면할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때 비로소 현실이 생겨난다. 그 진리와 용기는 최종적으로 사랑이라는 더 큰 원리에 포섭되어야 한다. 사랑은 그 모든 취약함, 가혹함, 배신에도 불구하고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모든 것에게 가장 유익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지향하는 마음이다. 이상적인 신은 진리, 용기, 사랑의 조합이며, 그 조합이 개인의 마음에 들어와 활동할 때 미래의 잠재성을 거머쥐고 최고의 현실을 만들 수 있다. 누가 이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
따라서 우리 자신의 행동을 분석해보면, 인간은 선한 길과 악한 길의 차이를 알고 있으며(의식적으로 저항하고 거만한 주장을 늘어놓긴 해도) 선과 악의 존재를 믿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창조한 것이 보기에 좋았다는 신의 말에는 그분의 창조행위에 진리, 용기, 사랑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창조행위(신의 창조든 인간의 창조든)를 통해 가능성의 영역에서 출현하는 모든 것은, 그 창조의 동기가 좋은 한에서는 반드시 좋다. 나는 모든 철학과 종교를 살펴봐도 다음 주장보다 더 대범한 주장은 없다고 믿는다. “믿고 행동하라.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본문 P 300
그렇다. 우리는 신이라는 최고선, 최고 도덕성, 이상을 지향해야 하며 실천해야 할 불가피한 운명과 책임을 가진다. 또한 신의 창조 원리에는 진리, 용기, 사랑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창조 그 자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여러 잠재성을 선택이라는 행위를 통해 현실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그 선택의 도덕성이 그 창조물(현실)의 품질을 결정한다. 곧 우리는 진리, 용기, 사랑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지닌 현실을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터슨 교수는 성경의 창세신화라는 매우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여 왜 인간이 영웅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본 책의 챕터 11과 12에 나와 있다.
삶의 필연적인 고통과 인간 본연의 연약함, 악에 대한 취약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수많은 고난과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자아낸다. 피터슨 교수는 그런 감정을 '분개함'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감정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왜 나에게?” 라는 질문은 심리적으로 적절하다. 과거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어떤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그러지 않는다. 흔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에는 부당함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예시)
이렇듯 ‘왜 나에게?’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불공평하다는 피해의식에 물들어 있다. 당신에게 닥친 끔찍한 경험이 왜인지는 몰라도 유독 당신을 노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오해는 비극에 노출되었을 때 분개에 사로잡히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당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있거나 조만간 일어나리라는 것은 현실의 구조가 정해 놓은 기정사실이다. 끔찍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거기에는 무작위 요소가 있다. 이 요소를 인정하면 개인적인 요소를 멀리할 수 있다. 무작위성은 방호벽이 되어 맹렬히 밀려드는 자기중심적인 분개를 막아낼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을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대체로 그 짝인 긍정적인 요소들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알면 매우 유용하다.
본문 P 391~392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닥쳐오는가?
이런 자기중심적인 분개심은 심리적으로 자연스럽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감정임을 피터슨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개선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분개심을 덜어낼 수 있는가? 그는 삶의 고통과 불행의 기정사실이 무작위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예 그 분개심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감정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분개심과 더불어서 거짓됨과 교만함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 한 신의 창조의 원리인 사랑, 용기, 진리와 이어진다. 우리는 가능성을 선택을 통해 현실로 창조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선택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는데, 창조해낸 현실은 그 도덕성에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서 거짓됨이 들어가게 된다면 선한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현실이 나오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이고 뒤틀린 현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거짓과 속임수로 만들어진 현실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과,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큰 교만함이라고 말한다. 아래의 인용문은 이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해놓은 것이다.
거짓과 교만의 첫 번째 공모는 신성과 진리와 선함의 관계를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 반면에 교만과 거짓이 합쳐진 마음은 사랑을 목표로 하는 용기 있는 진리가 선한 것을 창조한다는 생각에 반기를 든다. 대신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편협한 목적을 위해 언제든 크고 작은 변덕을 부려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거짓을 작동시키는 두 번째 교만은 자신에게 신과 같은 힘이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된다.
행동이나 무행동, 말이나 침묵을 통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혼돈 속에서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고 존재하는 잠재성 중 어느 것이 드러나고 어느 것이 드러나지 않을지를 이미 선택한 사람이다. 즉 남을 속이는 행위는 현실의 구조를 바꾸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왜 그러는 걸까? 이기적인 허위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무엇이든 진실된 말이나 행동이 만드는 세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임수를 통해 현실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건 교만이다.
거짓의 밑바탕이 되는 세 번째 교만은 거짓된 행동이 스스로 강력한 토대를 구축하여, 현실이 바로잡히고 새로워지더라도 자신의 거짓은 폭로되거나 파괴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대단히 복잡하고, 거의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다.
거짓을 정당화하는 네 번째 교만은 왜곡된 정의감과 관련이 있는데, 이 잘못된 정의감은 종종 분개에서 싹이 튼다.
이 네 번째 상황에서 사람들이 거짓에 기대는 이유는, 세계의 비참한 지옥에서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다고 억울해하고 분노하기 때문이다. 이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 사실 교만이 고개를 드는 때는 불공평한 대우가 자연적/사회적/개인적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예견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라기보다는, 운 나쁘게 나한테만 닥친 것이라고 믿을 때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에 빠지면 인생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본문 P396~397
물론 분개심과 현실 왜곡욕구는 매우 유혹적이고 또한 실질적이다. 피터슨 교수는 이러한 원망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감사함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런 유혹에 맞서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여기에 그는 그러한 유혹에 맞서기 위해 사랑이란 이름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하겠다는 어려운 결심이 서야 아무리 힘들더라도 선하게 행동할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닥치든 계속 나아가겠다는 험난한 도덕적 과업을 짊어지는 영웅의 삶을 권장하는 것이다.
세상의 하부구조가 망가지고 잘못된 것이 빤히 보이고
그것이 당신의 비전을 망가뜨린다 해도,
당신은 그 모든 차원에서 빛을 발할 조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올바르고 용감한 길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감사의 정의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곧 용기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요약하자면, "현재 질서에 감사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에 닥쳐온 혼돈, 고난, 고통에 대해 용감하고 진실되게 맞서 나아가는 영웅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삶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12가지나 되는 다양한 법칙들이 있으나 앞서 요약하여 이야기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법칙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밑의 모든 법칙들을 이해하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 아니겠는가. 세세한 건 그 다음이리라.
법칙1. 기존 제도나 창의적 변화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마라
법칙2.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법칙3. 원치 않는 것을 안개 속에 묻어두지 마라
법칙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있음을 인식하라
법칙5.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마라.
법칙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법칙7.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법칙8. 방 하나를 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꾸며보라
법칙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법칙10.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법칙11. 분개하거나 거짓되거나 교만하지 마라
법칙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덤으로 필자가 추가하고 싶은 법칙이 있다면, 그건 "신앙을 가져라"라는 것일 것이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한 좁은 의미의 신앙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선과 최고 목표를 믿고 지향하고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람은 본인의 주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빛난다고 믿는다.
본 책 [질서 너머]는 수많은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이야기가 있었지만, 필자가 봤을 때는 진정으로 중요한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어 정말 본질적이고 피터슨 교수의 인생철학을 관통하는 이야기만을 간추려서 작성했다. 따라서 필자가 언급한 부분 위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러분들의 인생에 모종의 파장을 끼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러분의 삶의 형태는 어떠한가?
질서 너머의 심연과 혼돈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보는 것이 어떤가?
누군가의, 본인만의 작더라도 영웅으로 살아가보지 않겠는가?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