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선언과 표백 세대의 의미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더 이상 획기적인 진보가 없는 새하얗고 덧없는 세상. 청년들의 풋풋한 꿈과 야망을 수정액처럼 덮어버린 세상.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
그곳의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고작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자신들이 품고 있는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것 뿐이다.
표백
그런 시시한 세상에서 불만을 제기하고자 한 여성은 자살 선언을 한다. 더 이상 위대하고 획기적인 야망과 꿈들을 품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시대에 이룰 수 있을 만큼 이룬 후 원없이 자살해버리는 것. 그리고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순교자들을 만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5년 이상이나 지속시키려는 계획. 그 계획에 휘말려버린 주인공과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젊은이들의 고뇌를 담아낸 책이 바로 이번에 읽게 된 장강명 작가의 「표백(漂白)」 이다.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바로 삐딱선을 타면서 내지르고 보는, 조금은 영리하지만 영웅심리가 강한 이 책의 화자 '적그리스도'. 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인생사와 그 인생에 큰 영향을 주게 된 주인공인 '제키(세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사건의 첫 발단은 20XX년 3월 'A 대학교 경영학과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가 있었던 밤이다.
젊은이의 희생정신과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한 취업 선배의 말에 토를 달면서 말싸움은 시작된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이후 뒷풀이 자리를 빠져나온 후 낯익은 이름의 몇몇 같은 과 학우들에게 술 먹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단체 메시지를 돌린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총 4명. 세연(제키), 적그리스도, 휘영(소크라테스), 병건(재프루더). 그들은 세연의 수상쩍은 담배를 피우면서 남자 3명을 순식간에 장악해나간다.
그렇게 자신의 사상을 종교 전파하듯 휘영과 병건 그리고 또 다른 2명에게 자신이 죽은 5년 후에 자신을 따라 자살선언을 하고 죽어달라는 약속을 받고 홀연히 학교 분수대에 얼굴을 처박고 자살한다. 인형 같은 외모와 몸매에 성적도 매우 우수하여 재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삼성에 특채로 합격하게 된, 일명 아쉬울게 없는 엘리트인 그녀가 자살로 뜬금없이 생을 마감한 것이다. A 대학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적그리스도와 휘영, 병건,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사귀게 된 추윤영, 대기업 오너 일가의 장남 박선우까지 전해진다.
5년이 지난 뒤, 적그리스도는 농식품부 7급 공무원이 되었고 휘영은 작은 잡지사의 기자가 되었다. 모두 세연이 권유해준 직업이었다. 그것을 둘은 부정하려 했지만 과연 세연은 이 둘을 포함한 나머지 순교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세뇌를 한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으나 마치 그에 응하듯 추(추윤영)를 시작으로, 박선우, 병건까지 차례로 자살을 하게 되었다.
자살약속을 한 인물들 중 남은 사람은 휘영 뿐. 그러나 그는 이미 자살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상태였고 그에게는 결혼한 아내까지 있었다. 그녀와 가까이 지냈음에도 자살 약속을 제안받지 못한 주인공 적그리스도는 소외당했으며 그녀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 인지, 아니면 알고 지냈었던 지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던 탓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세연이 자신의 자살 선언문과 표백세대에 대해 알리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 '와이두유리브닷컴(www.whydoyoulive.com)'에 여태 있었던 일들을 세연의 악행으로 변모시켜 전부 다 폭로한다.
논란이 거세지자 신원미상의 사이트 운영자가 연락을 하여 따로 만나자는 의사를 전했고 이들은 결국 양화대교 밑의 둔치에서 만나게 된다. 운영자의 정체는 세연과 똑 닮은 여동생인 세화였다. 이야기가 오가던 중 자살을 하기 위해 강물에 들어간 세화를 꺼낸 적그리스도는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된다. 와이두유리브닷컴의 운영자 신분이 밝혀졌지만 그녀의 형벌은 그리 무겁지 않은 수준에서 그쳤고, 사이트의 자살선언문과 표백세대 사상은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지금 세상은 너희들이 결론지은 것만큼 결코 완벽한 게 아냐.
난 알아.그러니까 내가 증명해줄게.
앞으로 5년, 아니 3년 안에 멋진 일을 보여주겠어.
또 합당하고 근사한 제안도 하겠어.
세화가 강에 들어가기 전, 적그리스도는 세연의 사상을 부정하면서 3~5년 사이에 그 부당함을 증명해보이겠다는 선언을 하는데 이를 2대 운영자인 '메리'가 녹화하고 녹음하여 철저히 선전도구로서 적그리스도를 이용한 것이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적그리스도는 다짐한다. 그녀에게 대항하고 부정하기 위해 세울 사이트 이름을 '디스이즈더리즌닷컴(www.thisisthereason.com)'라고 정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나게 된다.
이 책은 폭발적이지도 않고 열정적이지도 않다. 그저 시니컬하게,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아주 날카롭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 마치 나비의 날개짓 한 번이 폭풍을 일으키듯이 말이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에 의문을 던지고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결국 자살 선언문과 표백 세대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자살 선언문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기성세대들과 선조들이 이미 이룰대로 다 이룬 '완벽한'사회는 젊은이들이 획기적으로 이룰만한 무언가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원대한 꿈을 이루기 보단 개인적인 출세나 성공 같은 보다 작은 성취에 메달리게 되는데 완성된 사회는 이마저도 청년들을 부정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져서 성공의 가치판단 기준을 경제력으로 재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회가 열려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완성된 사회는 가능성이 그만큼 고갈된 사회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의 부를 두고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경쟁을 벌여야한다. 여기서 같은 세대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과도 경쟁을 해야하는데 그들에 비해 가진 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환경 속에서 일명 표백세대는 내면마저 추하게 일그러지게 된다.
그래서 고발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 그 완성된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하찮은 욕망을 채우는 데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며 의미 없는 삶을 보내고 우리 세대가 별 볼일 없음을 시인할 것인가.
아니면 담대한 결단으로 그대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고 우리를 비웃어오던 세상에 충격과 공포를 줄 것인가.
우리는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은 영웅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영웅다운 죽음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필자의 청소년기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때 생각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영웅으로 태어났다. 이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아직 완전하게 사회화가 되지 않았을 유년시절,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모님이라는 울타리에서 지내게 된다. 우리는 그 울타리 안에서 영웅이고 왕이고 세상의 중심이었다. 우리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을 모험하고 탐구하며 불꽃처럼 뜨겁게 휘몰아치는 아이디어를 마음껏 뽐내는 야심가였다.
그러나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될 쯤이면 기대와는 달리 자신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고 큰 재능이 있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축복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난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세상은 이미 많은 것들이 이루어져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고작해야 사회의 톱니바퀴를 굴리는 역할일 뿐인 것을. 심지어는 그 굴리는 역할조차 파이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그것을 차지하는 것마저도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나를 위한 위대한 영웅의 사다리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들을 위와 같은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의 시스템이다. 책에서 나온 자유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그 사람이 자유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법적 범위 안에 있는가(독재자&범죄자)'와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시장가치를 지니는가'이다. 궁극적이자 절대적인 이 가치기준은 어린 야심가들을 가차 없이 재단해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시스템은 어린 꿈나무들을 주입식 교육으로 철저히 이 기준을 이용해서 평가하기 좋은 인간으로 육성시킨다.
압도적인 물질주의가 판치는 사회. 그것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발전 양식으로 잡는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행복이고 성공의 지표라고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교육시킨다. 이렇게 하면 맹목적인 사회의 부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살선언문은 그럴싸하여 얼핏 들으면 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들었을때 고개를 끄덕일만큼 설득력 있어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우선 자살선언문에 나오는 원대한 꿈, 영웅의 삶, 큰 성공이나 목표만이 성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매우 다양한 가치들과 다양한 규모의 성공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성공과 행복의 의미를 제한시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자살 선언문의 틀린 점은 다음과 같다. 매우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선언문 자체에서도 스스로 밝혔고, 이후 병건의 자살 예고 게시글에서도 나오지만 이런 선언문과 표백세대에 대한 것들은 사회 변혁에 대한 운동이나 활동도 아니고 그냥 록큰롤과 같은 세상을 향한 반항의 표현 방식으로 지극히 개인(세연)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제 생각에 자살 선언은 이를 테면 햅번 스타일이라든가, 로큰롤과 같은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자기주장을 펼치는 표현방법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기를 의도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목표나 책임감은 없습니다.
책에서도 드러나고 종국에는 화자인 적그리스도마저 세연의 사상을 부정하고 이를 뒤집을 계획까지 세우는 꼴로 이야기가 종결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세연의 생각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은 마치 길을 잃고 헤메이다 끝에는 좌절과 우울, 슬픔에 빠져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소년과도 같은 현 시점의 젊은 세대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 아닐까 한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바위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과 셀 수도 없는 가능성들이 숨어있고 그것들은 단지 불친절할 뿐이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 말 그대로다. 내가 직접 발품을 팔고 시도해보고 해야 얻어지는 것들은 그 다음 얻어야 할 것에 대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또한 내 삶의 가치의 일부가 되며 더 나아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목표의 위대함이나 크기와는 상관 없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자체가 삶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고 자신감이 될 수 있으며 거기서 작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자살선언은 이에 대한 반면교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각성을 유도하는 것에도 자살선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사회적 수준에서 보자면 불친절하고 편협된 길만을 가르쳐주는 사회와 기성세대들에 대한 각성도 유도하는 것에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다양하고 넓은 가치들을 알려주고, 단지 시험으로만 재단하고 암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토론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눠볼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달라고. 또 누구나 위대한 업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그에 대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공평한 기회의 장려로써 희망을 선사하는 부드럽고 친절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자살선언이라는 분개의 표출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다들 본능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알 수 있다. 자살선언 대신 "인생선언"을 한 번 선포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