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

by STHORIA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을 살아갈 의미가 없어



때는 한밤 중, 친구가 필자에게 꺼낸 말이다.


"삶의 의미"


정말 많은 말들이 속에서 맴돌지만, 그 말들도 눈치를 보면서 서로 나오지 않으려는 듯 하다. 목구멍에서 턱하니 막혀 그저 "허허-"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만 나오게 만드는 말. 그만큼 삶의 의미는 정말 지구 상의 인구 수 만큼 있기도 하면서 현대인에게는 메말라버려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 것이기도 하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생각해왔으나, 많은 고민과 많은 서적들을 거쳐도 막상 입에 오르려 하니 공중에 헛발질 하는 듯한 감각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어려운 고민이거나, 제대로 된 사유를 하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접근을 하는 것 자체도 감이 오지 않는다. 삶의 의미란 대체 무엇인가? 꼭 정해야만 하는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맬 정도로 찾기 어려운 것인가?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주어진 것을 자신의 의미로 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최고선, 최고의 도덕적 관념을 바탕으로 한 규율에 맞춰 경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의미를 신에게 바쳐 사랑의 형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얼핏 원시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방식은 새삼스럽게도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효과적이리라.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사회와 기성세대가 바라는 인재상이나 인생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건 싫으나 좋으나, 종교와도 상관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에 따라가고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나오는 것들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대학 좋은 곳으로 가라
학점 잘 받아라
스펙 많이 쌓아라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취직해라
때되면 결혼해서 애 낳아라
돈 벌어서 집 장만하고 차 장만해라

(...)

그래야 일인분 하는거다


필자 포함 여러분들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숱하게 들어온 말들 아닌가? 마치 주문처럼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그 말들. 우리는 거의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여기에 따라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그 탐색과정부터 시작해서 정립하는 과정, 고수하는 과정, 유연하게 수정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상기하였듯 종교나 사회의 정언과도 같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게다가 종교적인 색이 짙었던 중세시대에 비해, 현대에는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오는 심적 허무감이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수립하는 과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놓는 것 같다. 차라리 믿는 종교가 있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선택지라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사회와 부모세대가 입을 모아 말하는 건 어떤가. 종교와 마찬가지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적어도 누군가가 걸어 봤던 삶의 방식이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해주길 권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조금 낡고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나, 여전히 그 힘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가서 좋은 학점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좋은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보낸다. 대부분이 바라는 그런 삶 아닌가?


하지만 마냥 좋아보이는 이 둘의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바로 오롯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 한계란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살, 부적응자, 낙오자, 실패자, 우울증, 각종 범죄 및 일탈 행위 등등. 꼭 이 같은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흔히 말하는 "현타"나 회의감이 강하게 오는 순간이 있다.


난 제대로 잘 살고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롯이 내가 세운 심지는 시간이 오래걸릴 수 있어도 그만큼 든든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많은 고민과 공부끝에 얻은 결론이 있다. 사람은 목표를 설정하고 지향하는 것에서 힘을 얻고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은 죄책감과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강한 부의 감정을 얻게 된다. 성경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단어인 '죄'는 영어로 'sin'이다. 이는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αμαρτία)'이며 뜻은 죄, 실패로 번역된다. 어원인 동사 '하마르타노(αμαρτάνω)'는 과녁을 빗나가다, 잘못하다, 죄를 짓다 라고 번역이 된다. 이는 즉 과녁인 목표를 빗나가는 행위가 죄의 의미로 이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옛말에는 왜 이런 흔적이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당장에 수렵채집 시절의 사냥을 보더라도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날은 굶게 되니 말이다.


신학적인 이야기로도 통한다. 안에 있어야하고 목표로 해야할 하나님을 벗어나게 되면 그건 곧 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표를 벗어남이 곧 범죄는 아니더라도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굳이 말이 필요할까.


그리고 범법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인생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죄를 짓는 것이 맞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책임을 유기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매우 원초적인 행위이자 의미 있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수립하는 것은 모종의 목표를 찾고 수립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표를 바라보고 이행하는 것이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를 찾아서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정말 많은 목표가 있어 딱 짚어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하자면, 진정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언가로 설정하라는 것이다. 다만 정말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 많은 것을 만나보고 경험해봐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이다. 글을 쓸 때면 오묘하게 마음이 고조되는 감각이 있는데, 이 감각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마 기회가 된다면 이게 업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하고, 하고 싶다고 느끼는 것을 스스로 찾아나서서 임시로라도 좋으니 자기만의 목표로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자기 자신을 한 번 믿고선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얻을 수가 있다.



하지만 때로 여기서 저지르는 실수가 있는데,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것이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로망이라던가, 어릴적때부터 가졌던 야망이라던가 하는 것은 일단 깔끔하게 잊고 백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낡아빠진 옛날 목표는 정리하고 새출발하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사회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있다. 옛날의 자신이 세웠던 것은 옛날의 사회와 옛날의 관념들이 지배했던 때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다르다.


알게 모르게 자신은 바뀌었고, 세상은 한참 바뀌었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자신의 옛날 아집에 넘어가는 실수는 저지르면 안 될 것이다. 항상 귀를 쫑긋이 세우고 공부를 통해 현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자기 자신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책 읽고 글쓰기라는 것을 목표로 하기 전에는 옛날부터 줄곧 꿈꿔왔던 연구개발 주제에 매여 있었다. 그런 주제에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어떤 유형이 인간이지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 꾸던 그 열망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친 것이다. 지금에서야 선회해서 지금의 목표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자신의 열심히 찾아서 세운 목표가 언제든지 갈아엎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삼분할로 크게 나누면 장기목표, 중간목표, 단기목표가 있을 것이다. 보통 고심해서 찾은 목표를 최종, 장기목표로 설정을 하고 그에 따른 중간, 단기 목표들을 수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영원하리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할까봐 무서운 것이다. 세상은 항상 바뀌기에 지금 현재 설정한 것이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항상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촉각을 곤두 세워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유연한 사고와 변화에 민감함을 유지하면서 여러 활동들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가는 목표를 찾는 것이다. 임시라도 좋으니 자신을 믿고 그것을 목표 삼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틀렸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고민해서 다시 고치고 재설정해서 또 나아가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것. 우리는 그 행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가?

혹여나 회의감이 든다면 자신이 목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지, 하고 싶지 않은 목표인게 아닌지, 제대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오늘도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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