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인턴] 내과인턴은 기술직이다

단순업무를 극한으로 갈고닦으리

by 작문의

명실상부 대학병원의 기둥 내과

흔히 '메이저(Major)' 과로 불리는 4대 천왕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한 축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학문의 범위는 얼마나 광범위한지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호흡기 내과, 내분비내과, 신장 내과, 혈액종양내과, 감염 내과, 알레르기내과, 류마티스 내과

이미 10개의 분과로 나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여러 병원에서 '노년내과' 같은 새로운 분과가 창설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수많은 과목 중 양이 가장 많을뿐더러 국가고시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출제되는 과목이기도 한 내과

의학에서 내과가 차지하는 범위만큼 대학병원에는 엄청난 수의 환자가 입원해있고, 이는 내과 인턴에게도 그만큼의 업무량이 주어진다는 슬픈 뜻이다.


ABGA

케모포트 니들 삽입 및 제거

폴리 카테터 삽입 및 제거

넬라톤 삽입

엘튜브 삽입 및 제거

관장약 주입, 핑거에네마

C-line 제거

피그테일 제거

Chest tube bottle change

각종 드레싱 및 실밥제거

각종 Culture

각종 동의서 받기

골수천자

복수천자



지금 당장 생각나는 술기가 이 정도이지 내과 인턴의 일은 이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외에도 모든 인턴들이 하는 처방, 검사 킵 등 여러 가지 업무는 당연히 기본이다.

내과 인턴은 업무 융단폭격이 쏟아지는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마음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아침 6시를 맞이한다.

왼쪽 주머니에는 붕대 자르는 가위, 오른쪽 주머니에는 네임펜과 OP site 표시용 펜

왼손에는 동의서용 패드, 오른손에는 업무용 휴대폰

일과가 시작되기 3분 전부터 긴장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콜을 기다린다.

그와 동시에 오늘도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병원에서의 특별한 하루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특별한 하루' 와는 다른 의미가 될 테니까


인턴이 힘든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인턴이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고난도 술기는 아니다.

의사면허는 있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인턴이 고난도 술기나 심도 있는 의학지식이 필요한 일들을 맡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일부와 들은 예외이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판단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업무를 하거나 레지던트 선생님 또는 교수님들께 노티 하는 일을 한다.

'어려운 일 안 시킬 테니 사고만 치지 말라'라는 병원의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인턴을 시작하고부터 본과 4학년 시절 국가고시를 준비할 때 쓰던 머리의 10분의 1도 채 안 쓰는 것 같다.

지금 국가고시를 본다면 과연 합격을 장담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머리가 굳어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대신 몸은 체대 입시 준비생의 운동량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타 모든 것들이 그렇듯, 인턴 일도 처음 시작할 때나 막막하지 조금만 지나면 금세 손에 익는다.

ABGA나 케모포트 너희들 삽입 및 제거는 하루에 십수 번씩 반복하게 되는데 그만큼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환자들이 보기에도 능숙해 보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어휴 선생님 완전 기술자 시네요 '라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이런 칭찬을 들을 때면 어깨가 으쓱하면서 환자분께 좀 더 친절하게, 또 좀 더 신경 써서 술기를 하게 된다.

칭찬받을 일이 거의 없는, 아니 혼나지만 않으면 다행인 우리 인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작은 따뜻한 관심 하나일지도 모른다.

만약 대학병원에 갈 일이 있다면, 인턴 선생님께 칭찬 한마디 건네보자

신이 난 인턴은 그 즉시 특급 서비스를 제공할 테고, 또 그날 하루 기분이 들떠서 힘든지도 모르고 일할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를 계속하면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손은 술기를 하고 있지만 입으로는 환자들과 대화하며 불편한 건 없는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고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명한다.

조용히 술기만 하기는 심심하기도 하고, 정적을 깨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어떤 의도로 환자들과 소통을 하든 간에 환자분들은 크게 만족하시는 것 같다.

이 의사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구나, 이 의사가 나를 챙겨주는구나

그저 인턴일 뿐 내 이름을 외워주고, 다시 입원했을 때 나를 찾는 환자들이 있다는 건 퍽 좋은 일이다


한 병동의 일이 끝나면 두 병동에서 일이 와있고, 두 병동의 일이 끝나면 네 병동에서 일이 와있다.

체세포분열을 연상케하며 숨을 막히게 하는 업무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서 일이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끝나지 않는 테트리스를 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블록들이 떨어지는데, 아래에 있는 블록들을 채워가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계속 없애야 한다.

언제까지? 근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병원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아서, 한 곳에서 정체가 일어나면 다른 곳에서 영향을 받는다.

인턴이 일을 느리게 하면 일이 쭉쭉 밀리면서, 다른 부서 사람들은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특히나 검사 예약시간이 정해져있는 CT나 MRI, 내시경 등은 인턴이 동의서를 제때 못 받으면 환자분은 인턴 때문에 예정된 검사를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치료 일정, 퇴원 일정 모든 것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환자 때문에 다른 환자들의 일정까지 밀리게 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ABGA를 하고 나서, 특히 Femoral artery(대퇴동맥)에서 시행한 뒤 지혈을 제대로 안 해 환자에게 Hematoma가 생긴다?

심지어 그 환자가 다음날 Femoral artery(대퇴동맥)를 이용해서 CAG(Coronary angiography = 관상동맥조영술) 시술을 받을 예정인 환자였다?

차라리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멈추는 게 낫겠다.


인턴의 일은 난이도는 낮지만 자칫 큰일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해야한다고 한다.

허나 정말 이게 의사만이 할 수 있는, 또는 의사만이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일들도 꽤 많다.

예를 들어 CAG(Coronary angiography = 관상동맥조영술)를 한자리의 지혈을 확인하고 드레싱하는 것은 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되어있다.

한 예로 어젯밤 10시에 CAG 자리 드레싱을 하러 가기로 했는데 응급CT킵으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환자는 너무 갑갑해서 붕대를 빨리 풀고 싶다고 계속 독촉을 했지만, 간호사 선생님들께는 의사선생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을 반복하셨다고 했다.

이후에 물어보니 간호사 선생님들이 이 일을 대신해주고 싶어도 동맥과 관련된 일은 간호사가 하면 안 된다고 되어있다고 하셨다.

깔끔하게 업무 분담이 되어있는 건 좋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일화였다.



인턴 초반에 내과턴을 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바리한 게 당연한 3,4월에 4월 턴이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술기들을 해볼 수 있었다.

모두가 인턴일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인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무렵에 처음 해보는 술기들이 많으면 그것 나름대로 힘들 거 같다.

우리 병원은 턴 표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만약 턴표를 바꿀 수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몸도 마음도 힘들더라도 인턴 초반에 힘든 과, 술기를 많이 하는 과를 도는 걸 추천한다.



일이 많으면 어떡해서든 일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창조해낸다.

본인이 휴식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그 누구도 쉬라고 말해주지 않는 인턴생활이기에 꼭 본인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각 층별로 급한 업무들을 쭉 배열해놓고 가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차례차례 내려오며 급한 것들을 후다닥 처리한다.

급한 일들은 주로 당일 퇴원환자들의 바늘 또는 카테터 제거, 당일 검사 환자들의 검사 동의서 받기, 주기적으로 F/U 하고 있는 ABGA나 irrigation 등의 업무이다.

초응급상황은 환자가 검사실까지 내려갔는데 동의서가 잘못 받아져 있는 경우, CT/MRI 킵, CPR 등이 있다.

이런 경우는 모든 계획을 일시정지시켜놓고 바로 뛰어달려간다.

급한 일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면 밀린 처방을 빠르게 내주고, 커피한잔 들이킨다음에 남은 급하지 않은 일들과 그동안 새로 쌓인 일들을 해결하러 간다.

병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이 과정을 나는 '전국투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킵해달라고 여러 병동에서 동시에 부르는 경우이다

나루토처럼 그림자 분신술을 쓸 수도 없고, 내 몸을 두개로 나눌 수도 없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럴 때는 인턴단톡방에 도움을 구한다

'시간 남으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저 좀 도와주세요'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 가지 술기에 계속 실패한다던가, 한 번도 안 해본 업무를 해야 한다던가 인턴생활을 하면 동기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굉장히 많이 생긴다.

그럴 때는 동기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동기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일들을 펑크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본인의 능력이다.



인턴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하나 고르라면 성실성인 거 같다.

손이 빠르거나 일센스가 있으면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다닐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이 느려도, 또 일센스가 없더라도 우직하게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돌아다니면 일을 밀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성실한 태도에 긍정적인 마음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일이 많으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일이 여유롭다면 편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그 두 가지가 있다면 당신은 바로 무적 인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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