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온 나의 첫 번째
오랜 기다림 끝에 나의 인턴생활 이야기를 담은 책 <의사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가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미 책표지는 PDF 파일로 수백 번 보아왔고 원고 내용은 워드 파일로 수십 번 읽어 왔던 터라 책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서 내가 알고 있는 '책'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는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책의 실물을 상상으로 그리며 하루빨리 만나보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 괜찮으면 좋겠고 오탈자가 없기를 바라는 소망. 이게 사진으로만 본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는 마음일까? 소개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책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이 마음으로 으레 짐작해 볼 뿐이다.
직접 책을 써보니 알 수 있었다. 서점에 놓여있는 수많은 책들 중 단 한 권도 거저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긴 시간 동안 원고를 쓰고 다듬었을 테고 출판사는 원고 이외의 모든 것, 그러니까 교정부터 디자인 그리고 촘촘한 유통망을 통해 전국에 있는 서점들에 책을 나르는 일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이제는 책을 펼치면 책의 내용보다, 그 책을 만들기까지 있었을 것이 분명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이 전국의 서점에 진열되는 모습들을 보며 왜 분업이 필요하고, 전문가가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자가출판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원고 작성부터 서점에 책을 들여놓는 과정까지 그 모든 일을 혼자 하다 보면 효율성과 효용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출판사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책을 구성하는 글 이외의 부분들은 전적으로 출판사에게 맡겼다. 내가 알고 모르는 출판사의 전문적인 노력 덕분에 내 책은 내게는 과분한 서점들의 '에세이 신간' 코너에 놓일 수 있었다.
내 책의 상하좌우로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놓여있다. 에세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다. 인생의 찰나의 순간을, 짧지 않은 삶을 담은 에세이는 작가가 '나의 인생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라며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담담하게 건네는 것 같다. 한 인생의 옆에는 또 다른 인생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놓여있고 그 또한 같은 말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을 먹고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그러나 결국 모두 다 사람 사는 일 일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에세이는 '모두 다 사람 사는 일일뿐'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은연중으로 드러내는 장르이다. 에세이들은 이야기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나의 삶이 이렇듯 당신의 삶은 그럴 것이라고.
내 책 주위에 놓인 에세이 신간 책들도 여럿 살펴보았다. 우연히도 내 책 바로 옆에는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이라는 의학 에세이집이 놓여있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시는 젊은 의사 선생님들께서 써 내려가신 이야기들을 묶은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젊은 의사들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려준다. 나는 오해의 대부분은 무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직업을 적폐 세력으로 몰고 가는 이 사회는 의사들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군조차 의사들이 어떤 스케줄을 소화해 가며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데, 의료계열에서 근무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의사들의 삶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이런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방법으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책이라는 매체는 아주 훌륭하다. 본인의 수명을 깎아가며 최선의 노력으로 환자를 위해 일하는 젊은 의사들이 소송과 투옥의 위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압으로 인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현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인지를 짙은 농도의 땀과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은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선생님,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 세상에서 잘 가꾼 부캐의 존재는 필수가 되어버린 듯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서점, 그리고 그곳에 놓인 수천수만 권의 책들. 그중 한 권일뿐인 내 책은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끌 수 있을까. 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학과 병원생활이 누군가에게는 관심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이 알뿐이다. 다소 차갑게 느껴지지만 이는 현실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관심을 두지 않고 스쳐 보냈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책은 작가님의 뜨거운 삶이 담겨있는 책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서점 안의 모든 책에 관심이 있지 않듯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나의 삶처럼 존중해야 한다.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고래의 수영실력과 치타의 달리기 실력을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이 사회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삶 또한 나의 삶처럼 뜨겁고 열정적일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우리 머릿속에 꼭 자리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기뻤던 순간은 내 책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가 내 책을 펼쳐보았던 흔적을 보았을 때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 나의 삶에 흥미를 느끼고 책을 펼쳤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느라 페이지가 조금 벌어져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또한 흥미가 가는 다른 작가님들의 신간 에세이는 꼭 목차라도 읽어보리라.
예체능에 몸담고 계신 분들의 고충 또한 알게 되었다. 가수, 성악가, 작가, 디자이너, 화가, 운동선수 등등 일정한 자격을 갖춰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을 스스로 증명하고 알려야 하는 직군의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소중한 작품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저 허울 좋은 자기만족에 불과하게 된다. 이 세상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굴러가고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에 재화들은 그 필요성과 가치를 끊임없이 알리고 증명해야 했다. 내가 뛰어난 능력을 갖는 것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본인을 홍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느끼는 요즘이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 이후로 이를 통해서 새롭게 연결되는 일들이 거미줄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는 누군가 먼저 내게 와서 제안한 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내가 적극적으로 먼저 문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장사는 위치가 90%라는 말이 있다. 요즘 나는 그 말의 뜻을 체감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한 가게는 은연중에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다. 그러다 사람들이 우연히 무언가가 필요하게 되는 순간, 뇌리에 박혀있는 그 가게가 '우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떠올라 그곳을 방문한다. 게다가 그 가게가 접근성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말이다. 소위 말하는 노른자 땅은 은연중에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값으로 그 비싼 자릿세를 내고 있었다. 발품을 팔아 사람들에게 나의 상품을 알리고, 사람들이 무언가 필요할 때 여러 경쟁 제품 중 나의 것이 우연히 떠오르도록 하는 것. 그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서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 그렇게 해서 다음에 비슷한 수요가 생겼을 때 나를 찾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추천을 해 줄 수 있을 만큼의 경쟁력을 갖는 것. 이곳저곳 발로 뛰며 현장에서 배우고 있는 교훈들이다.
과거 유재석이 무명시절이었을 당시 혼자 비디오를 촬영하며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텐데'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이해한다. 내가 바라는 바가 있으면 그 가능성이 불확실하더라도 과감하게 투자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로 뛰어나갈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출간을 하고 책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 나는 삶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