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에세이 출판후기 - 끊임없는 퇴고지옥

무한 퇴고지옥에 빠지다

by 작문의

지금까지 포스팅해 왔던 것처럼, 에세이 출간은 단 하나의 과정을 제외하고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집을 지을 때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며 지붕을 올린 뒤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제외했던 그 하나의 과정은 원고를 작성할 때부터, 그 원고가 인쇄소에 넘어가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한다. 끝없이 쳇바퀴를 굴려야 하는 햄스터의 운명같이 출간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반복해야 하는 과정은 바로 '퇴고 작업'이다.

퇴고는 ‘초고를 바탕으로 수정 및 보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전에 썼던 초고를 반복해서 수정하고 매끄럽게 만들어나가는 퇴고는 마치 보석을 세공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보석이라도 세공을 거치지 않고는 가치가 크지 않다. 아무리 비싼 다이아몬드라도 원석 그 자체로는 이물질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모양도 울퉁불퉁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장인의 노련한 기술로 오랜 시간 땀 흘린 세공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모두가 손에 넣기 바라는 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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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최종장 Part 1, Part 2

장인의 노련한 기술은 없지만, 여러 작가님들의 조언을 기반으로 내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도 30번은 반복해서 읽어나가며 퇴고를 해나갔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원고를 구석구석 뜯어보며 넣고 싶은 문장과 문단을 추가하고,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불필요한 문장이나 파트를 문장을 지워갔다. 읽었을 때 문장이 한눈에 쉽게 이해되도록 단어와 어투를 고쳤고, 얼마간 지식이 필요한 의학용어들은 따로 각주를 달아 아래로 빼서 해설을 달았다. 그리고 그 해설에 오류는 없는지 교과서와 그동안 공부했던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총 48개의 파트로 계획했던 나의 책은 파트가 44개로 줄어들었고 목차의 주제도 십여 개가 바뀌었다. 운동도 벌크업은 쉬워도 컷팅이 어려운 것처럼, 책도 내용을 추가하는 것보다 빼는 것에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output_3680314518.jpg?type=w773 탈고를 위한 끊임없는 퇴고

두 달간 퇴고를 하면서 똑같은 내용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어나가는 것은 너무너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아무리 긴 책이라도 새롭거나 흥미로운 내용이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해서 읽을 수 있었으나, 같은 내용을 수십 번씩 읽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심지어 내가 썼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원고를 어디 틀린 곳이 없나 눈에 핏줄이 설만큼 꼼꼼하게 읽는 것은 정신적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파트의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읊을 수 있게 되었고, 때로는 그것조차 넘어서서 오히려 이게 나의 경험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일상적인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게슈탈트 붕괴현상은 책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내게 여러 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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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일부

3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수십 번 읽는 것 보다도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은, 퇴고를 끊임없이 거듭해도 고쳐야 할 부분이 계속 눈에 보이는 사실이었다. 부적절한 표현과 오타 그리고 어색한 표현들은 글을 읽을 때마다 발견되었다. 이 말인즉슨 하루가 다르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로 긍정적인 경험이었지만,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읽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았다. 나는 지난 30년간의 인생을 통해 재미없지만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이름하여 환경 바꾸며 티끌 모아 태산 만들기’이다.



방에서 데스크톱으로 원고를 보는 것에 신물이 나면 노트북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고, 그것도 지치면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갔다. 그것도 안되면 집 근처 도서관에 가거나 스터디 카페에 갔다. 한 번에 몇 시간씩 원고에 집중하는 것이 고역일 때는 퇴고를 하루의 주된 일정으로 잡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잠깐, 점심 먹기 전에 잠깐, 약속 나가기 전에 잠깐, 씻기 전에 잠깐, 자기 전에 잠깐. 그 잠깐동안 파트를 하나씩 고쳐나갔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는 사실은 지난 인턴생활 중 배웠던 큰 인생의 교훈이자 내 책의 탄생의 근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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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출판사의 피드백을 받아 가며 스스로 수십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친 내 원고는 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고 눈에 편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고쳐야 할 점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퇴고의 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내 탈고를 했지만 탈고란 퇴고의 끝이 아니라 어느 정도 타협한 결과였다. 앞으로 서점에서 보게 될 내 책에 그저 오타가 없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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