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에세이 출간 후기 - 표지 정하기

책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책의 얼굴, 표지

by 작문의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통해 원고는 얼추 책의 모양새를 갖추어갔다. 그저 네모반듯했던 점토가 하나의 작품이 되어가는 것처럼 워드 파일이었던 원고는 조금씩 책이 되어갔다. 전체적인 틀이 정리되었으니 이제 대망의 책 표지를 정할 차례가 되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인 만큼 원고를 쓰는 것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 속담에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처럼 물건의 외형에 관련된 말이 많다. 그만큼 겉보기, 외형은 내면에 비해 그 중요성이 덜하지 않다는 의미일지라. 즉 표지는 내 책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그림이나 디자인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내 힘으로 표지를 제작하는 것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다행히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디자이너 분이 계셨기에 내가 애써 표지를 만드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출판업 역시 여타 다른 분야의 일들처럼 그 안에서 분업화되어 있었고 각 업무마다 전문가들이 계셨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원고를 쓰는 작가의 노력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출판사의 노력이 있다.


SE-1ae64ded-8076-4c87-b62a-ffe5b4e1b8f5.png?type=w773 출판사에서 보낸 표지 시안 1

출판사는 책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을 주 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출판사는 매일같이 들어오는 수많은 작가들의 투고원고를 읽어보고, 이 원고가 독자들에게 잘 팔릴지 그러니까 얼마나 시장성이 있을지를 계산해야 한다. 워드 파일로 존재하던 원고가 말끔한 표지에 덮인 한 권의 책이 되려면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함께하니 협업 파트너로서의 책임이 들었다. 결국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판매 부수가 올라갈수록 출판사도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미다스북스라는 출판사가 신인작가인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만큼 내 책에 투자한 시간과 자금보다 더 많은 이득을 돌려받기를 바랐다. 나는 내가 썼던 문장들이 계속해서 수정해 나갔고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와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읽기가 쉬울까 연구를 거듭했다.

SE-1f82f48c-2620-4380-9492-77dca004387f.png?type=w773 출판사에서 보낸 책 표지 시안 2

출판사가 표지 제작을 시작하기 전 나는 출판사에게 어떤 느낌의 표지를 원하는지 대략적인 설명을 보냈다. 의료 기구를 들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열정 가득한 막내 의사의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인트 컬러는 민트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책에 포인트 컬러를 넣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서점에 있는 에세이를 연구하며 얻었다. 최근에 출간된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장 신호철 선생님의 에세이인 <공항으로 간 낭만 의사>의 노란 포인트 컬러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흰색 배경에 한눈에 들어오는 파란 비행기와 노란 하단부. 그리고 파트 구분을 위해 삽입되어 있는 노란 속지는 책을 한층 깔끔하고 세련되게 만들었다.

?src=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5066%2F2024%2F05%2F14%2F0000045969_001_20240514175001152.jpg&type=a340 신호철 선생님의 에세이집 <공항으로 간 낭만의사>

선생님의 책을 참고해서 내 책에도 포인트 컬러를 하나 넣기로 했다. 그 색은 고민의 여지없이 민트색이 되었다. 인턴 생활을 하는 내내 사시사철 입고 다녔던 나의 근무복이 바로 민트색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어떤 민트색만 봐도 가장 먼저 인턴 근무복이 떠올리게 되어버린 나는 민트색을 매개체로 내 인턴생활의 기억과 감정들의 풍미를 높이기로 했다.

SE-6b63458d-b190-40bb-a7c8-52799f08b512.jpg?type=w773 병원에서 입던 근무복

대략적인 디자인과 포인트 컬러를 출판사에게 전달하고 몇 주가 지나서 총 5개의 시안을 받았다. 그중에는 내가 요구했던 대로 제작된 이미지도 있었고 디자이너 분께서 내 책의 설명을 듣고 자체적으로 제작한 이미지도 있었다. 다섯 개의 시안은 모두 개성이 강했고 그중 내 취향인 표지가 하나, 책과 어울리는 표지가 하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내 취향을 밀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책과 어울리는 것을 할 것인가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시안들을 보여주었고 이중 어떤 것이 제일 나은지 조언을 구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사실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내 취향이 나도 모르게 내 눈을 가릴 것을 우려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물어보았다. 20대 남성, 20대 여성, 30대 남성, 30대 여성, 50대 여성 등등

신기하게도 30대 남성그룹은 나와 생각이 비슷했고, 20대 남성과 20-30대 여성그룹은 그들끼리 생각이 비슷했다. 게다가 50대 여성그룹은 독자적으로 그들끼리 생각이 비슷했다.

가만히 조사결과를 보고 있으니 사람의 취향은 생각보다 그다지 주관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의 집단적 문화의 영향이 작용한 결과일까? 이렇게 그룹별로 취향이 비슷한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사회적인 분위기와 또래집단의 영향이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SE-b0493845-7056-4498-aa4c-94c711771df3.png?type=w773 출판사에서 보낸 책 표지 시안 3

사실 내가 마음속에 점찍어두었던 그림은 위의 그림이었다. 미니멀리즘 느낌의 깔끔한 사물들과 배경. 머리 길이는 내가 훨씬 길긴 하지만 피부색도 그렇고 수술복과 가운의 색깔까지. 팔짱을 끼고 서있는 이 의사가 나의 인턴 모습과 가장 비슷한 모습이었고 나는 이 시안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의 취향도 신뢰할 수 없었다. 내 취향 역시 20대 남성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과거의 경험들의 합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 영향을 분명 받았을 것이 분명하니까. 게다가 이 시안은 막내 의사보다는 좀 더 성숙하고 경험이 많은 의사의 느낌이 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마치 본인 진료실이 있는 전문의의 모습 같았다.



그렇다면 내 블로그를 주로 방문하는 연령층이 내 책의 구매자로 이어질 거라 생각해 블로그 통계를 살펴보았다. 내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면 내 책 역시 20-30대 여성들이 주로 구매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 책의 표지를 20-30대 여성 그룹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image.png?type=w773 내 블로그 유입 성별과 연령층
SE-b19bf461-753a-4075-bf4a-65b7096b0a67.png?type=w773 출판사에서 보낸 책 표지 시안 4

50대 여성들은 아래 표지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의사의 사명감이 느껴지는 강렬한 포스터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시안은 보자마자 마음속으로 가위표를 쳤다. 그림과 폰트체부터 생과 사를 넘나드는 비장한 의사의 느낌이 났지만 실제 나는 좌충우돌 막내 의사일 뿐이었다. 이 표지를 사용하기에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고, 경험이 무르익지 않았다.

SE-8f534964-f134-485e-a6c5-de1e0fb8d7e5.png?type=w773 출판사에서 보낸 책 표지 시안 5

최종적으로 20~30대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시안을 선택했고, 이후 조금의 수정과정을 거쳤다. 살구색의 배경 색깔의 진한 정도를 조금 낮추었고 하얀 피부였던 캐릭터에 색을 조금 입혔다.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자 더 활기차고 열정 있는 막내의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최종 표지가 확정되었다. 도착지점이 보이지 않던 출판도 점차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EC%9D%98%EC%82%AC%EB%A1%9C_%ED%95%9C%EB%B2%88_%EC%82%B4%EC%95%84%EB%B3%B4%EA%B2%A0%EC%8A%B5%EB%8B%88%EB%8B%A4_%ED%91%9C%EC%A7%80.jpg?type=w773 <의사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최종 책 표지


작가의 이전글의학 에세이 출간 후기 - 목차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