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태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듯 바닷물도 바닷물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법환바당의 바닷물도 마찬가지이리라. 법환바당의 바닷물은 법환바당에만 머무르지 않으니까. 바당에서 무슨 양으로 간다든가 기화하여 수증기가 되는 식으로. 조난당한 사람에게는 식수가 되고, 염분이 필요한 이에게는 소금이 되겠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법환바당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리라. 그건 이 여행도 마찬가지고. 이 여행 코스가 환상環狀이든 환상幻想이든 간에.
이 여행이 제주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동일하다. 경로가 원이기에 더더욱. 그러나 그 원의 구성원은 얼마나 다양한가. 바다와 숲, 해안도로와 인도 등등. 우리는 이런 모습들 때문에 끝이 웅장하다 기대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장대하다는 말이 있고. 하지만 그 끝은 생각만큼 웅장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채움만을 추구한 이들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고. 여행을 떠나다 보면 여기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벗어나야 비로소 우리의 여행은 완성이 된다. 안데르센의 말처럼, 여행은 우리의 정신을 젊게 하는 샘의 원천임은 사실이다.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처럼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순간이니까.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에 더더욱. 하지만 도파민 중독이나 익숙해짐 같은 말들을 생각하면 왜 우리가 채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지를 알기 쉽다. 너무 많은 걸 채우면 과거의 기억이나 갈망 등을 잊기 쉽다. 그걸 잊는 순간 우리는 흔들리기 쉬운 존재가 되고.
위와 같은 사례를 우리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계영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술을 마시기 위한 잔이건만 너무 많이 술을 채우면 아예 사라져 버리니……. 지식도 마찬가지 아닌가? 안톤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에 수록된 「내기」에 등장한 변호사를 보면 무슨 소리인지 알리라. 긴 시간 동안 독방에서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습득했으나 그 끝에는 인간 사회에 대한 경멸과 혐오였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속 주인공 한탸 또한 많은 잡지식이 있음에도 자신의 작업물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했고.
물론 적당한 채움은 필요하다. 그 적당함이라는 말의 모호함을 정제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작업이 힘들 뿐이지. 장자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장자 자신이 자유로움의 네 단계 중 자신을 잊는 경지, 즉 좌망을 최고 단계로 언급한 건 사실이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속적 지식까지 잊을 수 있어야 한다 말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세속적 지식까지 잊을 수 있다는 건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 나왔던 어떤 인물처럼,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음으로써? 그 이전에…… 왜 우리는 생리적인 무지가 좌망이 될 수 없는지를 묻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비움이 과연 완전한 비움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레포츠를 할 때도 이런 순간들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마라톤. 마라톤을 즐기지는 않으나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을 보면 내심 느끼는 그만의 감성이 있다. 장거리 라이딩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있기 때문일까. 러너즈 하이만 해도 그랬다. 처음에는 정말 죽을 듯 힘든 순간이 들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오히려 모든 게 잘 되는 느낌을 받는 현상 말이다. 장거리 라이딩도 그와 비슷했다. 처음의 목적이 사라지고 그저 그 자체로 모든 걸 즐기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이 오기 때문에.
다만 여기에 너무 몰입하면 그대로 문제이리라. 하루 만에 완주할 생각이 없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원점은 그 순간에 또다시 그 쓸모를 찾는다. 모든 걸 잊고 그 자체에 몰두하더라도, 결국은 더 넓은 세상에 속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우연한 일이나 과거 좋아했던 무엇인가 등등……. 혹은 생리 현상도 가능하리라. 원초적 본능. 그렇다면 내게는 뭐가 원점이냐고?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뭔가에 그렇게까지 빠진 적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리운 게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다 어느 시비를 접했다. 한기팔 시인의「자리물회」. 그 못나고도 촌스럽지만,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이라나. 그러나 둘러본 주변에는 마땅한 자리물회 식당이 없었다. 설령 났다 해도 지금은 먹지 않았을 것 같지만……. 자리돔이 철이 아니니까. 그래도 그 고향적인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아쉬웠다. 고향 하면 항상 그리운 느낌이 드니까. 실제로 이상형이 같이 있으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사람이라서 더더욱.
이쯤 되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그리운 음식들 생각도 조금씩 나고. 대표적으로 여름 민어. 갓스물이 된 여름 어느 날이었으리라. 이 시기에 민어가 맛이 들 철이라면서 무작정 내일로를 끊어 목포로 내려왔고, 수소문 끝에 그 집을 찾아갔다. 서울서 청년 하나가 혼자 왔기에 신기했던 걸까. 주인아주머니는 물론이고 옆 테이블에 계신 어르신들도 신기해했다. 민어 먹겠다고 이렇게 오는 사람도 흔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까. 그래도 그런 정성이 있어서 그런지 참 많이도 대접을 받았다. 민어 모든 부위부터 지리까지. 덕분에 그 여름을 잘 날 것 같다 했고, 실제로도 그 해 여름은 무던히 보냈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배가 고파졌다. 시간은 오후 2시. 점심이라면 너무 늦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 11시 이후로 먹은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것. 그렇게, 나는 원하지 않는 일시적 좌망에 들어섰다. 오직 허기만이 주축이 되는…… 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