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보는 이유

by chldew

그때는 알지 못했던 이유들이 있다. 문제 중에 서술형이 있는 이유도 그중 하나고. 문제를 풀 때는 답만 맞으면 장땡이라 생각하니까. 공리주의나 결과주의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과정이야 바꾸면 되지만 결과는 바꿀 수 없으니…….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어디까지나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건 언제나 결과고. 이런 생각 때문에 요즘은 메타 공리주의, 즉 과정과 결과 모두 좋은 방향으로 가는 걸 추구한다지만.


중고생 때는 거기까지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여기서 벗어나,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어디에 속박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니까. 실제로 그때는 술이나 담배는 물론이고 19금이라는 말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얼마 뒤에는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사르트르 또한 『존재와 무』에서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 말했다. 모든 자유에는 선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이후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만이 있을 뿐.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유에는 저주가 있다 말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했다. 이를 연장시킨 게 그의 또 다른 저서 『구토』고. 그렇다면 책임을 지길 거부하면 되지 않냐 할 수도 있다. 각자 자신만의 처지를 호소하면서. 혹시 아는가. 그 처지에 공감하여 동정할 성인군자가 나타날지. 근데…… 그런 삶이 과연 자유로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타인을 믿고 공동체를 이루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뜻이다. 이기주의자나 개인주의자들도 생각이 성숙할수록 그렇게까지는 안 한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면 이 설명을 이해하기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만약 모든 개인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살인조차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리라. 저 사람이 날 먼저 죽이려고 해서 나도 정당한 방위를 했다는 식으로. 이는 최후의 1인이 남고서야 끝이 날 터.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한 상은 무엇일까. 살아남았다는 사실?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는 현실로부터의 탈출 성공? 모두 다 인간이라면 당연하다고 누릴 권리였다. 누군가의 피살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인…… 권리 말이다.


이 지점을 로크는 지적했다. 모두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면, 그걸 어떻게 지킬 것인지. 이 때문에 법이 태어났다. 우리가 자유로울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그렇다고 이 말이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매체나 현실에서야 이를 악용하고 권력과 돈 앞에 장사가 없는 걸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그만큼 많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지나가는 시간은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 아니기에 더더욱.


이걸 거부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리라. 혁명가처럼. 가끔은 우리들도 그랬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거짓된 모습들을 뜯어고치고,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 믿으면서. 그래서 기존의 법이 잘못되었다며 들고 일어선 경우도 분명 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랬듯이. 그렇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한계를 결국은 깨달았다. 우리들도 마찬가지고. 누군가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설명할 수도 있고.


법환바당이라는 곳도 그런 느낌이 아닐까. 법 법法에 돌아올 환還, 그리고 바다의 제주도 사투리인 바당. 어느 책의 제목처럼…… 모든 삶은 물처럼 그 자체로 흐르고 살아간다. 물 또한 그 자체로 흐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식수든 정화수든. 그러나 결국은 자연의 순환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장치 때문이든 자연의 필터 시스템 때문이든 간에. 그 순간에 의미가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진다면 얼마나 자기가 기존의 존재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지 정도일까. 그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고.


상술했듯 우리는 모두 무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각자의 삶을 살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경험이 녹아든다. 이후에는 어쩌다 보니 식의 만남을 가지는 거고. 물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하긴 한다. 그런 사람들과 있어야 떠나는 맛이 나니까. 다만…… 그런 사람들 또한 어쩌다 보니 식의 만남으로 만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면 거기에 맞춰서 적응하려 하고. 그러면서 조금 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놓고 떠난다 하더라도. 그건 이 여행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다 해도 이 여행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당장은. 만약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를 놓아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자신도 없고. 그렇기에 다시 떠날 뿐이다. 원초적인 그 힘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러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 답은 여행의 끝부분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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