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넓은, 그러나 여기에 속해있으면서 속해있지 않은 세계를 보고 싶다.
누구나 꿈꾸는 내용이었다. 도달하기 힘든 곳이니까. 낯설다는 개념만큼 둘 이상의 속성을 지닌 개념은 없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익숙함이라는 말에도 둘 이상의 속성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한 번 접한 적이 있다는 뜻과 한때는 낯섦이었다는 뜻을 포함하니까. 그렇다면 낯설다는 말에는 얼마나 많은 속성이 있을까. 접한 적이 없었다는 뜻만 생각하면, 적어도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 존재를 접한 대상은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낯섦 또한 익숙함에 속한 무엇임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걸 느끼게 만든 건 어느 박물관이었다. 아프리카박물관.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어떤 나라일까.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아프리카에는 가축화가 된 동물들이 얼마 없다 말했으며, 무신론자인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태어난 곳은 아프리카 케냐다. 그래봤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리와 동떨어진 곳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에버랜드 같은 곳만 가도 아프리카와 관련된 물건들이 종종 보이니까. <세계테마기행>이나 다른 야생 관련 프로그램을 찍을 때도 그렇고.
이런 존재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 지금도 저 때와 큰 차이는 없고. 그나마 느끼는 거라면 야성미 정도일까.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곳이고. 실제로 제인 구달이나 다이안 포시 같은 사람들도 아프리카에서 연구를 하지 않았던가. 창작물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대표적으로 <타잔>. 방금 언급한 제인 구달 또한 <타잔>을 보고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걸로 유명하다. 그게 아니라도 아프리카 하면 사파리나 빅 파이브를 떠올리기 쉽고.
마냥 야생적인 느낌만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아파르트헤이트나 KKK 단체 같은 흑인 노예 문제로도 유명하니까. 중고생 때 세계사 책에서 접했을 제국주의 문제나 파쇼다 사건도 그렇고. 지금이나 과거에도 이 문제는 여전하다. 에티오피아 커피나 초콜릿 같이. 지금에야 조금 좋아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흑인들의 인권이 과거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다. 20세기에는 흑인들이 범죄율이 높다는 이유로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개들, 즉 흰 개들이 있었으니까. 로맹 가리의 『흰 개』라는 작품은 그걸 소재로 한 거고. (해당 작품의 후반부가 이를 제대로 지적하는데, 백인인 견주가 흰 개의 흑인 혐오만 교정해 달라고 흑인인 훈련사에게 요청을 했으나 흑인 훈련사는 당신들이 흰 개를 가졌듯 우리도 검은 개를 가질 권리가 있다 주장하며 요청한 개가 백인인 견주를 공격한 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당시에도 이런 문제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링컨이나 루터 킹, 말콤 X 등등……. 다들 방식만 달랐지 원하던 바는 동일했다.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인물들이 있었고. 존 맥스웰 쿠체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리라. 지식인인 주인공이 주변의 인물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니까. 작품의 배경 또한 아프리카인 데다 당신이 속한 곳이 백인 군부대이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제외한, 순수한 아프리카 자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때 있었던 월드컵이나 그런 것들까지 다 제외한…… 오직 아프리카 그 자체 말이다. 글로벌 사회니 뭐니 그렇게 말을 해도 우리는 글로벌에 그렇게까지 가까워지지 못한 기분이다. 그런 느낌이 우리에게 낯섦을 주고 있고. 이는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작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박물관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에게 필요하다 말하면서도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되길 바라지 않는 식으로. 현대 사회는 너무나 바쁘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도서를 한 권 떠올려 본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언급했던 말과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일까? 이 책 또한 우리가 흔하게 생각했던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니까. 해당 도서 자체에서 기억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적어도 흔함이 어쩌면 누군가가 만든 무엇일 수도 있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개인이 만든 결과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실제로 소와 폐어는 같은 부류지만 연어는 폐어와 다르다고 해당 도서에서는 취급했다. 연어만 아가미만을 써서 호흡하니까. 소만 포유류라고 하며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임에도.
여하튼,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것들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에버랜드에 있는 동물들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말하는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의 개념까지. 타국에 비해 생활 수준이 떨어진다든가 어떻다 하는 개념들도 그랬다. 생활 수준이라는 부분에서만 본 이야기니까. 만약 커피의 생산량으로 나라의 순위를 정한다면 우리는 아프리카보다 열등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를 재배할 수는 있으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원두는 여러 커피숍에서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 원두는 보기 힘들지 않은가.
생물의 다양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는 상술했듯 야성미가 넘치고 동물들의 종류가 다양하다. 영양은 물론이고 사자나 얼룩말 같은 동물들은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서는 담비나 고니 등을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야생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야성미 가득한 곳으로 간다. 이런 동물들을 취재하는 과정을 편집하고 소개하면서 우리들도 우리가 몰랐던 지식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거고. 재러미 웨이드의 <Monster Fish> 시리즈나 SBS의 <TV 동물농장>서 과거 다뤘던 콘텐츠인 <와일드 하트 인 아프리카>처럼.
물론 이 판단은 주관적이다. 이 개념을 남에게 함부로 강요해서도 안 되는 거고. 하지만 그 반대로, 생활 수준이 떨어진다 어떻다 멋대로 말하기도 웃기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개념들은 그렇게 많지 않기에 더더욱. 제이 그리피스의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라는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각 나라의 주민들과 몇 달을 살면서 그들의 삶의 지혜와 가치관을 배웠으며, 그들 중에는 일반인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걸 책으로 엮었을 때의 아우라는 우리가 감히 뭐라 말할 수가 없었고.
책에서만 드러나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간 vs 자연>의 메인 MC 베어 그릴스도 해당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동물을 사냥하는 방법이나 삶의 지혜를 얻었으며, 이욱정 PD의 <요리인류> 또한 각 요리에서 그들만의 삶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물이 귀한 중동 국가의 대표적인 요리들 중 하나인 타진처럼. 아예 식재료 자체의 수분만을 이용해서 해당 음식을 찌니까. 요리하면 생각나는 대가들 중 하나인 고든 램지 또한 각 나라에 가면 그들만의 방식과 그런 걸 최대한 배우려고 하고. 이래도 우리가 함부로 해당 나라가 어떻다 말하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머리로는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그게 아니라 말하듯 연신 뛴다. 그 둘의 논쟁을 지탱하고 진행하는 건 자전거의 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