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가정, 그리고 공동체
중천 해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외로움은 찾아왔다. 앞서 말했던 타이어 펑크 때문이었다. 인근에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있었으나 열지는 않았다. 이 사람도 어딘가로 떠난 건 아니었을까. 자신만의 추석을 보내고자. 문자만 보면 가을이라는 시간 속의 어느 날들 중 하나니까. 친척들끼리 모이거나 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리라. 일상이 피곤하기에 휴식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싶은 게 현대인이다. 어른들 또한 여러 부분에서 추석의 상차림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점점 작아지는…… 추석의 과거가 머물렀던 자리에 현대인은 들어선다. 우리의 거리는 문자 그대로가 적당하다는 말과 함께. 물론 그렇게 보내지 않는 현대인들도 있으리라.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들 가족에 대한 소중함만큼은 변하지 않으니까.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지만. 그래서 이 사회에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은둔형 외톨이를 철학상담에서 어떻게 치료하고 대해야 할지를 연구하기 위해 들은 말들이 있었다. 신비한 것들도 많았지만 어디에서 들었던 말들도 제법 되었고. 여기서 얘기할 단어 또한 이런 말들 중 하나다. 바로 머물 곳, 즉 이바쇼(ぃばしょ, 居場所)다. 일본어 고유의 단어이기는 하나 개념 자체는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으리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니까. 그러기 위한 조건들 또한 상세하게 나와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등장 배경을 보면 더욱 상세하게 드러난다. 도시화, 핵가족화에 따른 공동체 의식의 희박과 이웃 주민 간의 교류와 협력의 장이 줄어들어서 나온 개념이니까. 가정이 가정답지 못한 경우도 많고.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간에. 두 부분 다 이바쇼에게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후자를 중점으로 보는 게 좋다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가정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가정이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라면 집과 뜰을 의미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주거를 기반으로 의식주 생활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라는 뜻이 더 익숙하리라.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라면 주거와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야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는 행위나 그렇게 사는 공간이라지만, 머물러 산다는 행위는 단순히 머무름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다는 말 또한 한 공간에 짱박힌 걸 의미하지 않고. 실제로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나 방구석 폐인 같은 이들의 삶을 사람의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 또한 『인간의 조건』에서 관조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 모두가 인간의 삶이라 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우리는 일반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하지 않는 거고.
그렇다면 공동체란 무엇인가.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여 만든 집단을 공동체라 하나, 그 탄생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우연히 탄생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모이곤 한다. 성인이 될수록 그런 경향은 더더욱 강해지고. 가끔은 기존의 공동체 자체를 동경해 모이는 경우도 있다. 회사나 모임처럼. 그렇다면 가족도 동일할까. 가족이라는 말 자체를 동경하는 경우도 분명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가족과 관련 있는 명언들도 많이 있기에 더더욱.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전략에 따라 나온 가족도 분명 존재했으니까.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목표인 경우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나온 가정이 행복하다든가 하는 보장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전략만으로는 가정의 탄생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가정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이전에 상대가 있어야 하고. 이 또한 전략적인 경우야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한다. 상대가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지점들은 제각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리라.
그렇다면 이전까지 있었던 공동체들도 그럴 수 있을까. 지금의 공동체도 마찬가지고. 일을 위해 모인 공동체조차 일만을 위해 모이지 않는다. 일이 아닌 공동체도 그건 마찬가지고. 누군가는 그 일들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그 공동체가 운영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든다. 목적만을 생각한 공동체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붕괴하니까. 지금은 개인의 문제로 무너진 계획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무너진 공동체도 다른 목적과 이후의 부수적인 무엇이 생기면 다른 형태로 부활하니까.
단지, 이 공동체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를 모르기에…… 자전거는 또다시 달리고 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