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도 아침이다

by chldew

모든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가 따라왔다. 어제의 취기는 아직 객실을 나서지 않은 나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숙취가 오래가기로 유명한 탁주답기는 하지만……. 속이 아프지는 않다는 게 그나마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속까지 아팠다면 어느 쪽으로든 테러였을 테니까. 쌍방이냐 개인의 문제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약한 스트레칭 이후 바라본 창 밖은 오래전부터 맑았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직은 출발해도 괜찮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제주도의 날씨니까. 여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지금은 더더욱.


고개를 더 들려고 한 건 그래서였다. 애초에 토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눈앞은 조금 흐릿했다. 고글을 제대로 닦지 않아서 그런 거였지만, 그걸 안 건 스태프 한 분의 말 때문이었다. 그런대로 눈앞이 보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둔 게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침의 풍경과 어울리지도 않고. 아침 하면 보통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니 당연한 걸까? 우리가 보통 저녁이나 자기 직전에 샤워를 해야 어색하지 않다 느끼는 이유처럼.


그 느낌을 막아 세운 건 맑아진 고글로 바라본 숙소 근처의 산이었다. 그것도 일부가 구름에 둘러싸인. 눈까지 내린 날이었으면 더욱 제대로 막혔을까. 그런 분위기의 산만큼 우리에게 신비롭게 다가오는 곳도 없으니까. 어머니와 올랐던 설산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물론 그만큼 다치기도 쉽지만……. 그럼에도 이런 곳이었다면 하루를 더 쉬더라도 한 번 올라봤으리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보다는 최소한만 파괴하고 정복하지 않는 존재가 더 좋았으니까. 문득 떠오른 의문을 풀고 싶다면 더더욱.


- 우리는 언제 뿌연 것에 매력을 느끼는가? 그리고 왜 느끼는가?


조식으로 나온 토스트를 조금씩 먹으며 바라본 그릇에는 당이 서서히 퍼지고 있으리라. 첵스초코나 링후르츠 계열이었다면 색까지 분명하게 나왔을까. 그건 우유의 입장에서는 뿌연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불쾌한 무엇이고. 하지만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런 상태의 시리얼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우유에 고루 간이 밴다든가 하는……. 시리얼 입장에서는 제 바삭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만이겠지만. 그래도 인간 입장에서는 상관없는 일이다. 맛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고개를 들어 다시 산을 보았다. 여전히 산의 꼭대기에는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 위로 무엇이 있을지 묻고 싶었기 때문일까? 한동안 고개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건, 5년 전에 겨울의 한라산을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에 올랐던 관악산과 북한산에서도 그랬고. 구름층을 뚫기 전에 봤던 아래와 그 후의 아래가 주는 느낌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공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물론 한라산이 조금 더 청량한 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느낌들은 있었다. 거기에 이 의문을 위한 단서가 있는 기분이 들었고.


지인의 말처럼, 산은 멀리서 볼 때의 그 맛이 있다. 그만의 웅장함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등에 대한 경외심 등등. 김광규의 「영산」처럼……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구름이 주는 뿌연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모호함과 동경심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근데 이 느낌이 과연 산만의 전유물일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나오자마자 수많은 청춘들로 하여금 이 소설이 나왔을 때 무진을 찾게 했다. 공지영 작가 또한 『도가니』와 『해리 1, 2』의 배경을 무진으로 잡았고. 그래서인지 모르나 해당 작품들에는 그만의 현실감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모든 느낌을 주는 게 뿌염이고.


나 또한 그 세대 사람은 아니나, 과연 그런 곳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런 공간들을 보다가도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훌쩍 올라보고 싶어지는 거고. 누군가는 그런 순간들을 보며 대단하다 혹은 눈 호강을 하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무엇을 지배하거나 정복하고 싶은 욕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곳의 풍경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 느낄 정도로. 그것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행위들 중 하나이자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을 주었기에 더더욱.


여기까지 오고서야 탁주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산으로 치면 산허리와 산 아랫부분이 뒤집힌 느낌이지만 어떻게 보면 산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디에서 술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 질서는 분명 존재한다. 위는 맑고 아래는 흐리다는……. 그래서 밑에서는 위를 알 수 없고 위에서는 아래를 알 수 없다. 흔들어서 마시면 골고루 느낄 수는 있어도 위와 아래가 없어진다. 이 또한 그 자체로 있어서 가능한 일일까. 거기까지 풀어서 쓰기에는 아직 생각이 정리가 덜 된 느낌이다. 같이 가기로 한 라이더 한 분의 자전거 앞바퀴에 펑크가 나서 그런 듯 남은 생각들이 새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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