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피어나
2020년 2월,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퇴근 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 잔 걸치던 이들로 복작이던 저녁 시간 동네 식당은 더 이상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선가 곧 회사에서 다른 회사들처럼 재택근무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기 시작하였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
경미한 수준의 범사회적 변화도 최소 몇 달은 걸렸던 기억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 바이러스에 관한 뉴스가 휴대폰 뉴스창을 뒤덮은 지 채 2주도 되지 않아 온 나라가, 아니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가 PPE(Personal Protection Equipment / 마스크, 장갑, 손 세정제 등과 같은 개인 보호 장비) 타령을 하게 된 당시 상황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렇게 강력한 비말 감염성과 초기 높은 치사율로 모든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이 질병은 '거리두기'라는 미명 하에 온 세상 사람들을 나눠놓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 바이러스는 세상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1.5미터 이상으로 넓혀놓았지만, 너와 나의 거리는 그만큼 더욱 가까워졌다.
관계의 시작 단계에서 매일 같이 가까워졌던 너와 나는 바이러스 덕에 더욱 빠른 속도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혹자는 바이러스를 통해 사회적 인간의 고립이 심화된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10시 이후 문 여는 식당도, 여섯 이상의 시끌벅적한 식사 자리가 사라지고 큐알코드 본인 인증만 남은 고요한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꽃봉오리가 망울 속 격동을 이겨내고 피어나듯이 쉼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매일 저녁을 같이하고, 나는 좋아했지만 너는 내키지 않았던, 그러나 내가 좋아했기에 너가 좋아해보려고 노력하였던 소주 한 잔을 매주 두어번씩 했다.
출장을 다녀와서 자가격리 처분이 내려졌을 때는 두 번 코로나 검사로 안전함을 확인하고 집 앞 공원의 한가로이 피어가는 벚꽃들을 구경하러 가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나고 자란 너와 나는 그토록 바랬던 퇴근 후 국물닭발 한 냄비, 데친 콩나물 토핑 앞에서 양 손을 맞잡고 행복을 노래불렀지만, 취기 앞에 격해지는 감정에 등 떠밀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기도 하였다.
피어나는 벚꽃 꽃봉오리 앞에서 '우와 신기해!'를 연신 외치며 함께 얼굴을 맞대고 관찰하였지만, 카메라만 들이대면 고장나버리는 표정과 자세 때문에 서로에게 실망스러운 언사를 내비치기도 하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우리 둘과 이 세상 사이에 생긴 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차분히 음미하고 그 설렘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이격(離隔)이었다.
그 이격 덕분에 너와의 다툼도, 너가 나를 바라보는 미소도 사랑으로 느껴졌다.
온전히 너라는 대상을 향해 발현한 나의 감정이었다.
"우리 바람 쐬러 강화도 갈까?"
여행은 고사하고 집 앞 나들이도 고민스러웠던 시기였다.
차로 한 시간 거리의 강화도로 1박 2일의 여행을 결심한 우리는 치밀하게 동선과 일정을 계획하였고 노랑 외벽이 인상적이었던 펜션을 예약했다.
우리의 주거 반경을 벗어난 연인으로서의 첫 여행이자, 이름 모르는 공간에서 셀 수 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간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