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작품이 되었다. IV

우리의 시작

by 유승민

인천에서 꿈틀대던 감정이 새해 첫 태양의 태동과 함께 울진 앞바다에 도착하자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그렇게 붉게 타오른 감정은 부서지는 햇볕 조각과 검붉은 바다 위로 흩뿌려졌다, 풀어내어졌다.

뜬 눈 무박 2일 새해맞이 여행이 남긴 우리의 시간과 감정은 다시 찾은 인천이란 도시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평범한 저녁 날의 대화가 둘만의 비밀이 되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 후 늦은 식사는 새로운 기억으로 태어났다.

모든 순간들이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이끌어주고 있었고,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밝아졌다.


지금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당시엔 본인들이 가장 불쌍했던 직장인 새내기 커플에게 사랑을 시작할 때의 간지러운 감정과 퇴근 후 산책길 대화들은 효능이 매우 뛰어난 자양강장제 그 자체였다.

입사 반년도 채 지나기 전의 너는 신입사원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업무와 사수를 배정받았고, 시간이 지나 약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는 회사에서의 나날을 보냈다.

나 역시 일과 연애운이 같이 들어온 것인지 새로운 권역의 제조소, 프로젝트를 할당받았고, 잦은 야근과 출장을 동반한 매일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거나 애써 찾아내 의존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너와 나는 다소 험난했던 2020년과 사내 연애의 시작을 그 누구보다 서로에게 의존해 가며 이겨내었다.

서로를 통해 각자의 일상이 완성되는 신기한 시간이었다.

너의 미소는 밤 잠에 드는 나의 표정이 되었고, 너의 근심 어린 마음은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기분이 되었다.


2020년 1월 새로운 프로젝트와 제조소에 문제가 생겨 위로 상사 세 분을 모시고 출장길에 올랐던 때였다.

출장자의 건강과 안위에는 조금도 배려가 없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살인적인 일정에, 숙소부터 공항까지 끝없는 의전에 나는 출장 말미에 이를 수록 차츰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그러던 와중 귀국을 4일 앞두고 혼자가 된 나는 상사들을 공항에 바래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너에게 연락을 하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한국 시간은 새벽 두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드디어 해방..!'이라는 나의 카톡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너는 칼같이 답장을 해주었다.


고생 많았어 OO, 얼렁 들어가서 좀 쉬어. 나도 지금 자고 일찍 일어나서 연락할게!


기다렸다는 듯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너의 카톡 한 마디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나의 몸뚱이는 수액이라도 몇 번 맞은 듯 활력을 되찾았다.

멀리 떨어진 내 걱정에 잠 많은 너가 뜬 눈으로 나를 기다려줬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그 자체만으로 마냥 좋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무리 사랑을 갓 시작한 연인임에도 이 세상 당연한 것은 없기에 제일 먼저 고마움이 앞섰어야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림자처럼 함께 드러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 또한 행복과 함께 착실히 기록하고 가슴 한 켠에 모아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도 너라는 인연 앞에 모든 걸 내주었고 내줄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미처 그런 부분에 충분한 감상의 시간을 쏟지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너의 세상을 내가 느끼는 것과 동일한 행복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을지만 고민하였다.

그렇게 나는 관계의 초입부터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너와 떨어져 보냈고 또 아무렇지 않게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바닷가 앞 대형 카페.

조금 이른 금요일 퇴근 덕에 여유 있게 찾은 카페 앞엔 끝없이 날아드는 갈매기 떼와 그 속에 작은 혼돈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자 든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연애 초반 즐겨 찾던 가게임에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연초와 달리 어느샌가 하나둘 하얀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주말을 앞두고 시끌벅적한 사람들 대화 위 뉴스 채널 속에 붉은 속보가 화면 하단을 크게 채웠다.


[속보] 서울에 이어 인천에도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전국 2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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