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컴백 무대를 보며
유튜브 신화문학노트 에서 일곱용이 선덕대왕신종으로 들어간 장면
오늘 밤 서울은 참 낯설게 아름다웠다.
익숙한 광화문인데도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보랏빛 불빛이 차오르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숨을 쉬는 듯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 지금 이 순간,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이 되고 있구나.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은 아마도 자긍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BTS 아리랑 공연을 보며, 단지 큰 공연을 본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새롭게 살아날 수 있는지를 지켜본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무대, 세계적인 팬덤, 세계적인 송출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규모보다도 그 안에 담긴 결이었다.
화려함 속에서도 우리 것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세련됨 속에서도 오래된 정서를 조용히 데려오려는 태도.
그것이 이번 무대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히 ‘Body to Body’ 속에 스며든 아리랑의 결은 오래 남는다.
아리랑은 원래 고개를 넘는 노래이고,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엇갈리는 노래이며,
기쁨과 슬픔이 한데 섞여 있는 한국인의 오래된 정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무대에서 그 아리랑은 아주 낡은 것으로 머물지 않았다.
몸의 리듬 속으로 들어가고, 비트 위를 건너고,
젊은 감각 안으로 스며들며 전혀 다른 표정을 만들어냈다.
한의 노래가 에너지의 노래가 되고,
이별의 선율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아, 한국적인 것이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몸과 지금의 감각 속에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공연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내가 유난히 마음이 머문 부분이 있다.
‘No.29 성덕대왕신종’ 같은 트랙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이라니.
국보 책을 탈고 후라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저민다.
빠르게 소비되는 음악들 사이에서
천년의 울림을 끌어온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그 종소리는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깊은 바닥을 잠시 건드리고 지나가는 울림처럼 들린다.
서울의 불빛 위로 오래된 시간의 파문이 번지는 느낌.
나는 그 대목에서 공연이 더 이상 ‘보기 좋은 무대’가 아니라
시간과 문화가 한순간 겹쳐지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것이 가장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신화문학노트 에서 활용한 일곱용의 허황옥 호위장면
타이틀곡 ‘Swim’도 참 좋았다.
헤엄친다는 것은 참 묘한 말이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물결을 견디며 자기 리듬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삶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다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자기 호흡을 지키며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
BTS가 지나온 시간도,
그들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시간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Swim’은 단순히 흥겨운 타이틀곡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운 노래로 들렸다.
일곱 명의 멤버가 한 여성을 지키는 설정을 보면서 나는 고대 가야로 문화를 한가득 싣고 오는
허황옥을 떠올렸다. 그리고 일곱 용이 그 여인을 지키는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의외로 오래 남는 곡은 ‘Normal’이다.
화려한 무대와 거대한 함성 뒤에서
오히려 ‘평범함’을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라서 더 좋았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하루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빛나는 존재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Normal’은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인간의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곡처럼 느껴졌다.
이번 공연이 거대한 축제였음에도
결국 내 마음을 붙든 것은 이런 노래였다.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감각,
찬란함 속에서도 평범한 숨결을 기억하려는 마음.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참 다정하다.
이번 앨범을 듣고 있으면
멤버 중 누군가가 말했던 회전초밥처럼 여러 맛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한 곡은 경쾌하고, 한 곡은 깊고,
어떤 곡은 감각적이고, 어떤 곡은 오래된 시간을 불러낸다.
계속 다른 결이 돌아오는데도 이상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가볍게 듣기 시작했다가
문득 어떤 트랙에서는 마음이 멈춰 서게 된다.
그것이 이번 앨범의 매력 같다.
쉽게 다가오지만 쉽게 끝나지 않는 음악.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한참 뒤에 혼자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번 공연이 서울을 단지 화려한 배경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랏빛으로 뒤덮인 서울은 단순히 예쁜 장면이 아니라
한국의 현재가 얼마나 생생하고 자신감 있게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광화문이라는 공간, 아리랑이라는 정서,
성덕대왕신종의 울림, 그리고 세계로 뻗어가는 무대.
이 모든 것이 한자리에 놓이자
나는 새삼 한국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우리 것은 박제된 옛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 속으로 들어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서울이 보랏빛으로 증명해 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공연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서울이 보라색으로 물든 밤,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롭게 빛났던 시간.
아리랑은 다시 젊어졌고,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보랏빛 감정이 되었으며,
우리는 운 좋게도 그 안에서 한국적인 것의 미래를 잠시 본 것 같다.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