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에서 BTS 아리랑까지, 그리고 광화문의 일곱 용
<광화문에 모인 용들의 용무>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단지 김유정의 소설 속에 흘러 있던 아리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안해」와 「솥」, 「만무방」과 「산골나그네」 속에서 사람들은 울지 않고 노래했다. 가난했고, 속았고, 때로는 비루했지만, 끝내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 노래를 따라가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질문하게 되었다.
아리랑은 왜 계속 불리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부르고 있는가.
그 질문은 나를 더 오래된 이야기로 데려갔다.
아기장수 두포의 전설, 억울하게 꺾인 존재의 서사.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전혀 다른 무대 위에서 아리랑이 울리고 있다. 이제 그 노래는 더 이상 떠나는 이의 슬픔만이 아니다. 스스로를 선택하고, 함께 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불러 모으듯, 역사 속 용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문무왕의 바다 용, 수로부인의 용, 선묘낭자의 용, 거타지의 용, 알영의 용, 운문사의 용, 그리고 마지막 용이 된 단종까지.
각기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던 존재들이, 아리랑을 따라 서울 경복궁 광화문으로 향한다.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이야기를 부르면 존재가 깨어난다는 믿음, 이건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의 철학이다.
그리고 그 존재들이 결국 한 자리에 모인다는 서사의 완성.
그 도착지는 광화문이다.
2026년 3월 21일,
광화문에는 26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Netflix를 통해 190개국에 동시에 송출된다. 세계의 시계가 한국의 시계를 기준으로 삼는 날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규모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의 오래된 이야기, 신화와 민요, 문학과 음악이
동시에 세계의 언어가 되는 환상적인 순간을 뜻한다.
그 중심에 아리랑이 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김유정의 인물들이 지켜냈던 자존감의 노래,
억울한 죽음을 넘어 이어져 온 존재의 리듬,
그리고 지금, BTS의 무대에서 다시 울리는 아리랑.
나는 그 사이를 걸어왔다.
텍스트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확장하고,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며,
마침내 하나의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광화문 위로 일곱 용이 모이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함께 노래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방식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던 이야기들이
몸을 얻고, 소리를 얻고, 다시 살아나는 순간.
그래서 이번 공연은 단순한 K-POP 무대가 아니다.
한국 문화가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장면에 가깝다.
아리랑은 더 이상 ‘슬픈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연결의 노래이고, 선택의 노래이며,
무너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김유정의 문장을 떠올리고,
아기장수의 그림자를 지나,
일곱 용을 하나씩 불러 이 자리에 세웠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그날, 전 세계의 일원으로 그 노래를 함께 듣는 일이다. 가슴 벅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