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재정에 대한 오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원이다.

by 노진호

정부는 올해 약 730조 원의 재정을 지출할 예정이다. 작년보다 8% 이상 증가한 수치이고 내년과 내후년의 지출도 계속 늘어날 것이 유력하다. 일부에서는 과도한 확장 정책으로 나랏빚이 늘어나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


기우라고 말하기 전에 재정지출과 국가부채(정부부채), 또는 국채(정부채)에 대한 흔한 오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 재정지출은 세금을 걷은 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먼저 지출하고 나중에 세금으로 회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확장 재정이 곧 재정적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경기가 활성화되어 세금이 많이 걷힌다면 확장적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재정수지는 흑자가 된다.


둘째 재정적자로 인해 누적되는 국채는 누군가의 안전 자산이 된다. 재정지출을 위해서는 우선 국채를 발행해야 하며 나중에 걷은 세금으로 국채 원리금을 갚는다. 세금이 부족하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한다. 그런데 만일 정부가 철저한 재정 중립을 유지하면서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세금을 걷는 즉시 국채를 매입해 소각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시중에는 회사채처럼 민간 부문이 발행하는 위험 자산만 남게 된다.


셋째 자국 통화 표시 국채는 이론상 발행에 제약이 없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중앙은행은 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하거나 은행에 국채를 매도한다. 이것을 통화정책이라 부른다. 은행이 중앙은행에 국채를 매도하면 지급준비금이 늘어나고 반대로 국채를 매입하면 은행의 지급준비금은 줄어든다. 지급준비금은 하한선은 있지만 상한선이 없다. 은행이 중앙은행과 국채를 거래할 때 고려하는 것은 지급준비금의 잔고 상태와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다. 은행 입장에서 정부는 국채와 지급준비금을 교환할 수 있는 또 다른 거래 상대인데, 금리 조건만 맞으면 은행은 정부로부터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중앙은행에 매도하면서 지급준비금을 조절할 수 있다.


세금은 소득(GDP)에 비례하므로 국채/명목GDP 비율이 높아지면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재정지출을 위해서는 국채 발행이 먼저이며 세금이 국채 발행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국채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라기보다는 현재 세대의 소득 분배 장치다. 국채/명목GDP의 변동은 국채 잔고의 증감, 실질GDP의 증감, 물가의 변동으로 분해된다. 재정지출로 인한 실질GDP의 증가는 누군가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재정지출을 위한 국채 발행은 누군가에게 금융 투자 이익을 가져다준다. 다만 과도한 재정지출은 인플레이션 세금을 통해 모든 통화 보유자의 구매력을 하락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무분별한 확장 재정과 국채의 남발은 통화에 대한 신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인과관계를 단순화하고 위험을 과장하며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힌다.


완전고용 내지 공급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확장 재정은 물가와 임금의 상승을 초래할 수 있지만 취업 포기자를 포함한 유휴 자원이 많고 소비와 투자 지출이 정체되면 물가 상승은 제한된다. 작년 말 국내 15~29세의 청년 실업률은 6.2%였고 ‘쉬었음’이라는 응답자를 포함하면 15.5%였다. ‘쉬었음’을 포함한 30대 실업률은 상승 추세에 있으며 앞으로 AI 사용이 확대되면 더욱 상승할 것이다.


청년층의 대학 진학률로 평가한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1위다. 막대한 교육 투자 비용을 고려하면 청년 실업의 증가가 게으름 탓일 리 없고 ‘쉬는’ 청년이 늘어날수록 자원 낭비를 의미하는 매몰 비용의 규모는 더 커진다. 선진국이 될수록 성장과 물가에서 차지하는 인적자원의 역할과 비중은 높아진다. 상상력과 혁신을 발휘하는 것은 천연자원이 아니라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할 것은 돈이 아니라 미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확장 재정의 의지와 아이디어의 부족이 아닐까 한다.


[머니투데이, 1/19]


[참고]

1. 은행은 지급준비금이 늘어나면 대출 여력이 늘고 반대로 지급준비금이 줄면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경기가 위축되어 대출 위험이 높아지면 은행은 대출을 포기하고 중앙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해서 국채 자산을 늘린다. 경기가 호황이라 하더라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사실상 국채 매매금리)를 높이면 은행들은 대출을 포기하고 중앙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해 국채 자산을 늘린다. 국채는 안전하지만 금리는 대출 금리보다 낮다. 경기가 위축되거나 기준금리가 인상되어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하면 지급준비금이 줄어들고 은행의 대출 여력도 감소한다.


2.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매년 5~6%대의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 이후에는 재정수지 적자 폭을 줄이는 추세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5~8%의 재정수지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최근까지 두 나라의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비교하면, 미국과 일본이 비슷하거나 일본이 미국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 국채 잔고는 미국이 더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GDP 대비 국채 비율의 상승 폭은 일본(1995년 84% → 2024년 236%, +152%p)이 미국(1995년 48% → 2024년 96%, +58%p)보다 훨씬 크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 국채 잔고의 큰 폭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질GDP와 물가상승률이 높아서 국채/GDP의 비율의 상승을 상쇄할 수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장기간의 디플레로 인해 실질GDP와 물가가 낮아져서 국채/GDP의 비율을 추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가계의 소비성향이 높고 기업 투자도 활발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가계의 소비성향이 낮고 막대한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부채 구조조정을 하느라 상대적으로 투자가 정체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높고 장기 금리도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고 일본은 매우 낮은 수준의 물가와 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결론적으로 확장 재정이 성장과 물가와 금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그리고 실제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 간의 차이(=실제 수요 – 공급 능력)에 달려 있으며 확장 재정이 유효 수요 및 공급능력과 상관없이 물가와 금리를 상승시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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