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로이 SF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 작가의 다른 소설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이다. 세계를 구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우주로 나간다는 대략적인 전개는 <인터스텔라>와도 비슷했는데, <마션>과 <인터스텔라> 모두 감명 깊게 본 나로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영 기간이 끝나기 전에 봐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어제 청량리역 롯데시네마에서 감상했다. 간단하게 평점을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을 주고 싶은 영화다. 2시간 반 동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었는데, 같이 보러 간 아는 동생도 상영 시간 내내 집중해서 봤다며 영화의 서사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연출이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영화를 볼 때에도 많은 생각을 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만큼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타우 세티'까지 가서 왜 타우 세티만 혼자 빛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탐사선을 보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지구에 알리기 까지 하는 것은 굉장히 낮은 성공 확률을 가진 작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기도, 말 그대로 '성모 마리아에게 성가라도 부르며 신께 빌면서 진행해야하는' 작전인 것이다. 작중에서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 扮)는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떠는 학생들을 '인류 최고의 과학자들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며 안심시키는데, 인류 최고의 지성, 즉 이성으로서 세상과 우주의 현상과 원인을 규명한다는 이미지를 가진 과학자들 중 최고들만 모여 제시한 작전이 결국 신에게 빌면서 성공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다고 느꼈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앤디 위어'의 센스가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과학과 신앙, 종교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맥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크게 이러한 대립에 기여한 다윈의 진화론이 제창되기 이전의 과학이란 대체로 종교와 신앙에 대립하지 않았다. 과학을 다룰 때는 종교, 신앙을 크게 고려하지 않거나, 오히려 전지, 전능한 존재를 통해 창조된 이 세상을 인간으로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수학자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은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과학과 신앙은 언제부터 척을 지게 됐을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우주의 법칙이나 창조, 그리고 역사에 대한 설명이 종교적 구전이나 엄격하게 규율화된 경전 등이 우리가 관찰하고 규명하는 세상의 섭리와 어긋나게 되면서부터 일것이다. 번개나 지진, 화산 폭발은 신의 분노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대기 현상과 지각 활동과 같은 자연 현상이라는 것을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해를 위해 인과 관계를 통한 설명을 요구하는 인간의 고집으로 인해서 만들어 진 게 신이 아닐까? 그리고 신과 신이 만든 세상, 그리고 그 법칙을 인간의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것이 종교관과 경전이다. 그러면 신에 대한 믿음이란 결국 인간의 믿음이란 불과하다. 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러기를 바라는 것 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헤일 메리'라는 작전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성공하기를 바랄 수 밖에, 믿을 수 밖에 없다. 가능성이 없는 작전이라면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영화적 연출이라고 할까, 기법이라고 할까, 이러한 것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다. 그레이스가 최초로 에라디언 '로키'와 최초로 접촉하고 로키가 헤일메리호의 입구가 어딘지 인지하여 서로의 우주선에 터널을 만들어 도킹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어두운 터널 안이 마치 '어둠의 숲 가설'을 연상케 했다.
어둠의 숲 가설이란 페르미 역설에 대한 답안으로 제시된 가설인데, 페르미 역설이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왜 외계인은 없(는 것같)지?'라는 물음이면, 어둠의 숲 가설은 '없는 척 하는 게 제일 안전하니까'라는 답안이다. 더 길게 풀어서 설명하면, 만약 우주의 모든 문명이 합리적이고, 이들이 투쟁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면, 다른 외계 문명의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차라리 서로 접촉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숲 가설'이란 딱히 서로 소통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을 때의 가정이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혼자 밖에 남지 않은 두 명의 우주인으로서, 서로의 행성을 구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로키는 '소통을 하지 않아야 하는 합리적 행동'이 아니라 헤일메리호에 먼저 접근하여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고, 그레이스의 모습을 본딴 인형을 주면서 소통을 시도하며, 이성적 행동(침묵의 유지)이 아니라 비이성적 행동(소통과 교류)을 통해서 고독이라는 서로의 문제와 나아가 서로의 행성을 구한다는 미션까지 완수한다. 이러한 '어둠의 숲 가설'에 대한 모티브(로 보이는 장면)와 그에 대한 반박은 또한 고찰할 거리였고, 영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였다. 사족이지만, 로키의 존재는 또한 생명에 꼭 산소와 수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작중 그레이스의 주장의 증명 그 자체인데, 이런 점도 서로의 존재를 통한 서로의 구원 서사라는 점이 또 재미있다.
그레이스가 만난 외계인 '로키'는 작중에서 '좋다'는 엄지 세우기를 반대쪽인 땅으로 꽂는데, 그레이스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로키는 이게 더 좋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그레이스도 같이 엄지를 같이 아래로 꽂으며 그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 소통하는데, 나는 이것을 단순한 유대 관계에 있는 밈적 표현 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로키가 공격성이 없으며 자신에 대한 소개를 위해 가장 처음 던진 캡슐을 개봉하려고 할 때, 그레이스는 'Righty-tighty, left-loosey(오른쪽은 꽉, 왼쪽은 느슨)'라며 캡슐을 돌려 열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에게 통상적인 방식이었고, 로키가 준 캡슐은 오른쪽으로 여는 구조였다. 뿐만 아니라 로키는 소통을 음의 높낮이와 길이로 하는, 고래와 같은 방식을 통해 의사소통하며 물컹하고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필요로 하는 인류와 다르게 단단하고 대부분이 무기물로 구성돼있고 팔은 다섯 개, 눈이라고 할 것은 없으며, 입과 항문이 동일한데다 성(性)의 구분이 없다. 이렇게나 인류와는 다른 에리디언의 특성은 그 생김새 만큼이나 이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로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대상이 서로 밖에 없음과 협력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감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로키에 대한 친밀감을 형성시킨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갈 때 쯤이 되면 로키가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에 가까운 가벼운 바람 또한 생긴다.
이는 서사에 대한 '풍미'를 더욱 고취시킨다. 마치 햄스터 볼 같은 구체 안에서 굴러다니며 재잘재잘 떠드는 로키가 단순히 주인공의 조력자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성을 구하러 온 사명을 가진 또다른 '그레이스'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지구와 에리다니 두 행성의 운명을 건 절정의 순간에 더욱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SRIjgJDnI
이런 관점에서 이 OST는 한층 더 특별하게 들린다. 아스트로파지의 포식자를 수거하러 가는 가장 격렬한 장면에서 사용되는 이 OST에서는 인간의 목소리도 들리고, 오르간 소리도 조금씩 들린다. 이 오르간 소리는 마치 에리디언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상 코멘트 중에서는 '인간과 에리디언 두 종희 공포와 희망을 들을 수 있다'는 평이 있는데,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디언 '로키'가 마치 그레이스가 키우는 지성체 반려동물처럼 연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점이 좋은 점이자 아쉬운 점이었다. 하나의 지성체로서 뭔가 엄숙하고 진중한 모습도 비추었다면,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 그런 서사까지 넣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나는 이런 점 때문에 10점 만점에 9점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요즘 보기엔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으레 인류의 멸망이라는 막중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주제는 대표적으로 <인터스텔라>, <투모로우>, <노잉>, <삼체> 등을 통해서 비춰진 바와 같이 무겁게 다뤄진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 메리>는 ─엔디 위어의 <마션>에서도 그랬던 바와 같이─ 자칫 우주라는 거대함에 압도되어 느껴지는 공포라던가 무기력함의 주제를 코믹하게 다루면서도, 풍부한 서사와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을 구성해낸다. 거기에 더해서 앞서 이야기한 영화적 연출, 그래픽, 미장센은 정말 예술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상영 기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만약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얼마나 재밌냐면, 당분간 도서관에 들러 원작 소설을 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