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을 읽고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을 어떻게 평해볼까. 요즘 대박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평론가 평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박평식 "두 꼬마(배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현나 "죽음이 두렵지 않은 톰(왕)과 헉(통인)의 존재감이 묵직하다"
정재현 "톰(소시민적)의 욕망과 역사적 비극의 교차점 위에 선 활(사)극"
최선 "마크 트웨인(영화)은 잊힌 모험을 어떻게 회복시키나, 그에 대해 응답한다"
이용철 "톰 소여(장항준)의 온도가 끓는점에 도달하다"
천만 영화의 영화평을 요리해보니 꽤 그럴싸하게 이 책과 들어맞는다.(고쳐 쓰고 보니 영화평이란 게 해당 영화를 안 보고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몇 개 어휘로 돌려막기도 가능하겠다는 오해가 불쑥. 어쩌면 이야기란 다 거기서 거기여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이 평들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몇 개 덧붙여보자.
만약
삐삐롱 스타킹의 어머니 린드그렌이라면 "삐삐가 졌다. 하지만 교훈과 감동 제로에선 내가 이긴 듯"
고아들 이야기의 아버지, 찰스 디킨스라면 "출생의 비밀 따윈 없는 뼛속까지 상것들 이야기"
여전히 대한민국 영화계의 미래 봉준호라면 "기생충을 뛰어넘는 사기술, 반전, 결말"
그리고 나의 평은 이렇다. "내 아들이네."
이 책은 톰과 허클베리 핀의 마을에서 강도단을 결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시작하자마자 미치도록 웃기다.) 허클베리 핀이 아버지의 학대에 못 이겨 탈출하고 마침 도망친 노예 짐과 뗏목과 카누를 이용해 미시시피를 여행한다. 여행하던 중 두 명의 사기꾼을 만나 짐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다니게 되지만 사기꾼들은 돈이 궁해지자 결국 짐을 도망 노예로 신고하고 돈을 받아챙긴다. 허클베리 핀이 짐을 구하러 간 곳이 톰 소여 이모의 집이었고, 그곳에서 톰과 재회해 짐을 구출한다.
허클베리핀이 톰의 재능에 못 미치는 순진함과 거짓말로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빅재미는 톰이 등장할 때이다. 후반부에 톰의 이모집에 들어가게 된 허클베리핀이 톰을 만났을 때는 정말 <기생충>에서 비오는 날 옛 가정부가 돌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남편이 지하에 있다고 했던 장면만큼 충격이었고, <관상>의 이정재가 등장하는 씬만큼 강렬했으며,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가 펨벌리에서 엘리자베스를 향해 걸어오던 씬만큼 매력적이었고, 은퇴했던 김연아가 러시아소치올림픽을 앞두고 돌아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했을 때만큼 오싹했다. 왕의 귀환!
톰이 짐을 구하는 마지막 100쪽 분량은 불꽃놀이를 볼 때만큼 화려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 거리며 볼 수 있는데다, 톰의 '탈출 미학'과 그 미학을 실현하는 의지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흡사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을 연상시킬만큼 철저한 열출가다. 그의 꾀는 그리스를 구한 오뒷세우스의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톰은 자신이 책에서 배운대로 죄수도 탈출시켜야 하고, 죄수 탈출을 위한 요건(뱀과 쥐와 거미가 우글거리는 감옥, 셔츠에 피로 쓴 글씨, 돌에 새긴 일기, 몇 년을 조금씩 파낸 구멍, 식탁보 사다리, 눈물로 키워야 하는 현삼화)을 총족해야 했기에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훔치고, 꾸미고, 연출한다. 짐은 며성을 얻는 죄수가 되어야 하기에 이 탈출은 많은 증거를 남겨야 한다. 이 발상들의 심오함과 기발함, 재미는 상상초월이고 계획의 디테일은 봉테일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
일례로 톰과 헉이 이틀을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탈출 구멍을 파는데(칼로만 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짐이 몇 분만에 곡괜이로 탈출 구멍을 파버린다. 하지만 탈출은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이뤄져야 한다. 짐이 머무는 헛간에 큰 맷돌을 넣어야 돌에 글씨를 새길 수가 있는데 돌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죄수인 짐이 밖으로 나가 맷돌을 같이 옮겨오고 짐과 맷돌은 다시 헛간에 갇힌다. 톰이 나타나기 전보다 톰이 나타나서 죄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고달픈 짐이다. 탈출은 몇 시간이면 가능하지만 톰의 규정에 따라 삼주 동안 준비된다. 톰은 이 탈출 계획과 실행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식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놀라운 건 짐은 이미 여주인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미 자유로운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고 있었다는 점. 오직 순수한 재미를 위해 이 소동을 벌인 것. 톰은 진정 위인의 어린 시절을 가졌으며, 불타는 예술혼의 소유자가 아닌가.(에휴, 어디까지나 남의 자식일 때 이야기다.)
톰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고, 이 이야기는 내 아들의 이야기라고 평했지만 내 아들은 톰 소여만큼 탈출 미학을 가지지도 못한데다, 용감성과 과감성 부족하고, 책도 안 읽기 때문에, 아무래도 허클베리 핀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거짓말을 해놓고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바로 잊어버리는 것도 허클베리 핀과 똑같다. 금방 들통나고 행동에 일관성이 없어서 핑계와 거짓말로 땜방을 해야 하거나 실패하면 억지를 부리게 된다. 즉, 거짓말에 능숙하지만 치밀하지 못해서 대체로 궁지에 몰렸다가 욱하고 무논리 발사하며 끝이 난다. 하여, 동생으로 부터 한결같이 듣는 평이 있으니 그것은 "형은 논리적이지 못해요"다.
우리집의 헉(둘째)을 알아보기 위해 수학 문제집이 어려울 때 세 아이의 행동을 먼저 보자. 문제집이 풀리지 않으면 첫째는 운다. 우는 자신에게 주목하는 동생에게 "뭘 봐"라고 뇌까리고 제 방으로 꺼진다. 셋째는 문제집을 던지거나 찢는다. 둘째는! 조용히 답을 베낀다. 요즘은 학원을 다니므로, 학원 과제를 다 했는지 묻는다. 둘째 헉은 "그럼요 아까 다 풀어놨어요. 오자마자요.(이런 msg는 의심을 산다는 걸 아직도 모른다)" "그래? 좀 볼까?" 둘째 헉 답한다. "방금 제가 뭐라고 했죠?"(이런 썩을.)
아들이 톰 소여처럼 자신의 규정대로 까다롭게 움직일 때도 있다. 그건 시험 기간이다. 시험기간은 그야말로 그 어느때보다 놀기 좋은 시즌인데, 여차 하면 공부를 안해버릴 거라는 겁을 주어서 부모를 위협하기 좋기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하면 안 하는대로 하면 하는 대로 액션이 어마어마해서(점수는 일관됨) 우리는 홀린 듯 아이가 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에겐 일단 공부를 안 하는 사춘기 남아성을 지키기 위한 규정이 있다.
1. 스카에 가서 마음 놓고 논다.
2. 공부는 안 해도 시험은 봤기 때문에 점심은 거하게 친구들과 먹어야 한다.
3. 집에 안 들어가도 된다.
4. 잔소리를 들으면 모든 걸 내팽개친다.
이런 규정을 고수하기 때문에 부모는
1. 스카에서 놀 비용을 댄다.
2. 점심값을 주지 않으면 무인 카페에서 죽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보내 친구들과 먹고 놀게 한다.
3. 집에 와서 자는 걸로 만족한다.
4. 잔소리를 혹시라도 하면 아이는 자신의 규정대로 모든 걸 내팽개쳐야 하기 때문에, 그냥 삥 뜯기며 당한다.
이때는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우리는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에 아이의 규정을 준수한다. 이토록 자신의 규정에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면 세상 살아가면서 오히려 그 올곧음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렇지만 아들 입장에선 "일단 공부를 안 하는 사춘기 남아"에 대한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게 되는데, 이 재미는 지나쳐서 자식에게까지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을 정도일 것이다. 동생에게만 안 물려주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알리는 말'에 저자는 "이 이야기에서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고소당할 것이며, 교훈을 찾으려는 사람은 추방당할 것이고, 줄거리를 찾으려는 사람은 총살당하리라."라고 썼다. 이 에세이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임을 밝히는바, 자식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도, 이 일로 아이의 미래를 점치지도, 주제를 찾지도 말자.
마지막으로 마크 트웨인처럼 이 에세이도 수미상관을 노려보자. 이 에세이에 대한 평은 막내의 레퍼토리가 딱인 듯싶다. "논리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