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에 온사람

16장. 돌아온 자리에도 남아 있는 것

집에 돌아왔을 때,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바다를 보고 걸었는데도
몸보다 마음이 더 조용했다.


수진은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은 채
잠시 현관에 서 있었다.


익숙한 공간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불을 켜자
늘 보던 거실이 그대로 있었다.


소파, 작은 테이블,
창가에 놓인 화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공기가 부드러웠다.


수진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에서의 시간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파도 소리,
노을빛,
그리고…


손의 온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폈다.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수진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굳이 TV를 켜지 않았고,
괜히 음악도 틀지 않았다.


그냥 조용한 상태로

하루를 다시 떠올렸다.


준호의 표정,
말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걷던 시간.


그 모든 게
크지 않았는데도
작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잘 들어갔어?”


준호였다.


수진은 화면을 보며
작게 웃었다.


“응. 너도?”


곧 답장이 왔다.


“응. 오늘… 고마웠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답을 썼다.


“나도.”


짧은 대화였다.


그 이상 이어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걸
둘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밤이 내려앉은 거리.
가로등 불빛이 조용히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창문에 살짝 기대며
생각했다.


사랑이 꼭
크게 시작될 필요는 없다는 걸.


이렇게 조용하게,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도
있다는 걸.


오늘 하루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갔지만,


사실은
조금 달라진 하루였다는 걸.


수진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자
바다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같이 서 있던 사람.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아직은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 감정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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