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이 세상가운데 사랑과 공의를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일까?
원자력 발
기후위기는 알지만 이것이 정의의 문제인가? 그렇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다. 기후정의를 잘 드러내주는 일러스트다.
국가적 기후정의: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소위 선진국들은 과잉소비와 에너지 낭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며 물질의 풍요와 혜택을 누린다. 남반구의 국가 즉, OECD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 그 나라들은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지만 기휘위기로 인한 피해인 가뭄과 홍수, 폭염과 물부족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약 4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부족을 겪고 약 1억 명 이상의 어린 여성들은 위험에 노출된 채 물을 기르느라 학업과 취업을 중단한다. 해수면 근처의 사람들은 홍수로 인해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거나 기후 난민으로 전락한다.
지역적 기후정의: 우리나라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각종 의료, 문화,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서울에 없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이 풍요의 혜택을 누리는데 필요한 에너지인 발전소, 이 혜택을 누리면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담는 쓰레기매립지, 그 많은 고기라 지칭하는 가축(소, 돼지, 닭)의 도살장이다. 그러면 그 많은 에너지와 고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쓰레기는 어디로 사라지는가? 고압송전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암발병과 소음, 분진, 땅과 물의 오염, 집값은 누가 보장해 주는가? 고스란히 각 지방의 발전소 주변, 도살장 주변, 매립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남겨진다.
세대 간 기후정의: 현세대와 달리 다음 세대는 폭염과 폭우, 기후재난의 피해를 2-3배 정도 심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재의 1/6만 배출해야 지구 온도 2도씨 이상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는 데이터다. 다시 생각해 보면 겨울에 우리가 트는 난방을 1/6로 줄일 수 있는가? 일주일에 한 번만 자차를 몰 수 있는가?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 지금의 냉장고에 1/6반 채울 수 있는가? 아마 아찔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에너지 좀 더 쓰자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를 계속 겪을 것인가?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도는 핵발전소의 개수와 상관관계가 있다.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프랑스 4위 일본 5위 한국, 이 나라들 중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는 프랑스와 한국이다. 토지면적당 핵발전소의 개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두렵고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수주를 당당하게 말하고, 이 땅에 원전을 더 짓겠다는 이 나라의 발상은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여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진실을 알고도 시민들은 핵발전소를 찬성할 수 있는가? 핵발전은 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에너지를 좀 더 쓰겠다는 이유로 생명과 맞바꾸게 하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와 우리는 싸워야 한다.
그런데 더욱 눈 가리고 있는 건 핵 폐기물이다. 사실 그 단가에는 핵폐기물 처리 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햭폐기물을 저장수조에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 쓰는 것도, 식혀진 핵폐기물은 처치 곤란으로 발전소 옆에 그냥 쌓아두고 이 문제를 후손에게 미루것이나 마찬가지인 태도를 취하는 어른들의 태도... 볼썽사납다.
이제는 에너지의 전환이 필요하다. OECD국가 중 재생에너지 비율이 8% 안팎인 나라, 석탄석유화학발전이 73%를 웃도는 나라, 아직도 이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와 개발에 세금을 보조해 주는 나라..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슬란드는 재생에너지 보급률은 100%이다. 독일은 2022년을 기점을 재생에너지 비율이 50%를 넘었다. 재생에너지 발전, 태양광 보급률 강대국이 어느 나라인지 아는가? 바로 중국이다.
디지컬시대, 가상현실의 시대, AI의 시대에 전력공급은 더욱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전기는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떻게 분배되고 어떻게 쓰이고 폐기되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에너지를 안 쓰고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을 먼저 선택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구축과 담대한 전환, 상상하길 마다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