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암에 걸린 아버지에게 온 식구들이 집중한 사이 엄마가 병들었다. 세탁기 안에 방치된 옷가지들과 까맣게 타버린 냄비가 뒹굴고 냉장고 안에서 음식이 썩어 갔다. 집안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나타났지만 치매일 거라 의심하지 못한 사이 엄마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다.
엄마가 돌보지 못한 부엌을 정리하다가 손길이 가지 않아 먼지 쌓인 구석에서 오래된 접시를 찾았다. 어릴 적 특별한 음식을 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올케는 낡은 접시들을 버리자고 했지만 내가 가져가겠다며 챙겨 왔다.
먼지를 닦아 내고 접시를 들여다보니 잊고 있었던 음식이 생각났다. 사실 음식만 떠오른 게 아니었다.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던 음식과 분주한 젓가릭질 사이로 밥상 위를 오고 가던 이야기들, 그렇게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음식과 하나가 됐다.
암에 걸렸던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엄마와 점심을 함께 먹겠다며 친청에 매일 갔다. 밥을 먹는다는 건 단지 허기만 채운다는 것은 아니어서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위로해 주고 엄마의 병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잊게 해 주었고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엄마와 함께 먹은 음식은 너무 평범해서 요리라고 말하기도 망설여지지만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하며 간을 보고 밥상에 올리는 모든 일들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 됐다.
과거라는 말로 잊혀지거나 흘러가버릴 시간들도 다시 불러내서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새로움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들은 엄마의 접시에 담겨 앞으로도 계속 밥상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