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가고]를 읽고
갑자기 시작된 폭풍으로 가족들은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 같이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점점 알게 된다. 서로 찡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고 급기야 화를 내고 만다. 그래도 가족인데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폭풍이 지나가고]는 댄 야카리노의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폭풍이 몰려왔어요. 이런 폭풍은 처음이었어요. “ 게다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건 더 불안을 키우는 법이다. 아빠와 세 아이 그리고 강아지가 갑작스러운 폭풍 속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불안을 가족이라서 힘들어하다가 가족이라서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그림책을 펴면 폭풍이 치는 하늘을 보여주고 나서 속표지에 폭풍이 시작되는 순간에 아이들이 집 밖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큰 딸은 나무 위에 만든 작은 집에서 책을 읽고 동생 둘은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강아지와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평화로운 일상은 깨진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집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 얼굴은 놀람과 짜증이 함께 묻어있다. 딸이 책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장면 뒤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여기에는 부부의 결혼사진, 아이들 어릴 때 사진 등 가족이 함께한 소증한 순간이 있다. 엄마 없이 아빠와 세 아이가 있는 사진이 최근인 듯 맨 위에 가장 크게 벽에 걸려있다.
“온 가족이 함께 집안에만 있으니 어딘가 어색했어요. 자꾸 문제가 생겼어요. 분위기도 나빠졌어요. 점점 나빠졌어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더 나빠졌어요. 정말 왜 이러는 걸까요? 가족인데 말이에요.”
가족이 함께 있기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더 많다면 가깝다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이라 편하고 이해해 줄 것 같고 봐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인데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이가 나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가족은 우선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자기 방에 들어 가 있으면 서로 다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내리 친 천둥번개로 가족은 다시 뭉친다. 서로를 의지해야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모습을 내보이고 솔직해지면서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됐다. 그 위로와 위안이 두고두고 큰 힘이 될 것이다. 그 밤이 지나고 가족은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여전히 다투지만 빨리 화해할 줄 알게 됐고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 가족 효능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이 가족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쳐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분명히 다가 올) 어려움을 전보다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언젠가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림책 속 폭풍이 지나가고 집안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그림 속에서 햇살이 얼마나 눈부실지 그리고 따스할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가족이 아니어도 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가족을 찾게 된다. 특히 아이를 낳고 보니 자식의 존재가 동기 부여가 될 때가 많았다. 가족이 모두 집에 들어온 뒤에야 편하게 잠이 드니 늦게 들어오지 말라던 부모님의 잔소리는 이제 백번 천번 이해하는 말이 됐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뭘 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편안함, 안정감 같은 것이었을 텐데 가족에게 기대하는 전부였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