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넓은 문'이었고, 육아휴직은 나의 '좁은 문'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아이 한 명당 2년, 우리 회사가 보장하는 육아휴직의 총합은 4년이다. 연년생 두 아이를 낳으며 2년을 썼고, 작년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1년을 더 썼다. 남은 1년은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위해 아껴두려 했다. 하지만 남편의 강력한 권유로 나는 올해, 마지막 남은 1년의 휴직 카드를 연달아 꺼내 들었다.
신생아 때의 휴직은 그저 '살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먹이고, 재우고, 달래는 24시간의 본능적 사투.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지금의 휴직은 결이 다르다. 본능을 조금 내려놓자, 비로소 나의 삶을 돌아볼 정신적 틈이 생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게 회사는 '넓은 문'이었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사표를 던지는 전업 엄마들을 보며 나는 늘 경외감을 느꼈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 회사 업무가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합법적으로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장소다. 무거운 아기를 안아줄 일도 없고, 귀를 찢는 울음소리에 방해받을 일도 없다. 조용하다 싶으면 사고를 치는 아이들 때문에 가슴 철렁할 일도 없다. 심지어 그곳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주면서 돈까지 준다!
세상은 복직을 '당당한 워킹맘의 승리'라 부르고, 휴직이나 퇴사를 '경력의 단절'이라 부른다. 주변에선 묻는다. 이모님 월급보다 많이 버는데 왜 쉬느냐고, 설령 적게 벌더라도 무조건 일터에 붙어 있어야 사회적 지위가 유지되지 않겠느냐고. 그들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으로 가는 길은 확실히 크고 넓으며,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좁은 문'을 선택했다. 여학생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에 뒤처지지 않는 이 시대에, 꿀 같은 출근 기회를 마다하고 가사노동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 협착하고 좁은 길이다. 육아휴직 급여조차 이미 소진되어 경제적 이득도 없다. 내년 복직 때 승진 누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 것도 자명하다.
하지만 이 좁은 문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아는 풍경이 있다. 말과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나와 내 아이만이 공유하는 찰나의 눈 맞춤과 성장의 기록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다 줘서 내린 여유로운 결정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영혼과 아이의 영혼이 마주 앉기 위해 기꺼이 지불한 '기회비용'이다.
내년 상반기면 나의 이 특별한 은총은 종료된다. 복직을 할지, 아니면 이 좁은 길을 더 깊숙이 걸어갈지(퇴사)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기한이 정해진 이 소중한 휴직 기간을 충분히 즐기며 기록해 보려 한다.
이제부터 매일 글을 쓰려한다. 마음만 먹고 띄엄띄엄 썼던 게으름을 뒤로하고, 이곳에 공표함으로써 나를 '글쓰기'라는 또 다른 좁은 문으로 밀어 넣는다. 비록 길은 좁고 찾는 이는 적을지라도, 그 끝에 있을 생명을 기대하며 오늘 첫 문장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