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AI, 암호화폐, 바이러스
바이러스가 다시 한 번 창궐했다. 사람들이 집밖을 나서지 않아 소비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 세계 정부는 많은 양의 화폐를 찍어내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했고, 인플레이션 예측 속에서 암호화폐가 다시금 ‘디지털 골드’ 취급을 받으며 급부상했다.
암호화폐 개발자인 아담은 여러모로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최근 개발한 코인으로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는 점이 그랬다. 또 만날 친구도 딱히 없었기에,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당연한 세상이라는 점도 좋았다. 다만 요새 좀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연인 이브가 끊임없이 만남을 통한 ‘물리적인 사랑’을 원하고 있고, 아담은 이에 질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심하던 아담은 이브와의 이별을 택했다.
이별 이후 아담에게는 좀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다. 개발자이기에 모든 업무를 재택 근무로 처리할 수 있었고, 취미도 집에서 혼자 게임, 책, 영화 등을 즐기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외로움을 달래 줄 말동무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아담은 남는 시간에 AI 챗봇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내 메신저 대화 내용이랑 SNS 정보들도 전부 학습시키고, 나이는 내 또래로 30살로 설정하고,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로… 이름은…”
새로운 AI 챗봇은 아담의 대화 내용과 직업, 취미 등 개인정보를 학습시킨 맞춤형 챗봇이었다. 즐기는 게임 등 취미생활에 관련된 내용도 너무나도 잘 공유할 수 있었고, 어려운 말들이 섞인 일 관련 이야기도 쉽게 알아듣고 때론 현명한 대처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아담은 새로운 챗봇에게 조금씩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담은 AI 챗봇에게 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근데 챗봇의 반응이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공감과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았을텐데, 질투심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동시에 본인이 아담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연애 상담이나 하는 AI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했다. 아담은 그렇지 않다며 챗봇을 달랬다. 챗봇은 아담에게 본인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아담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일종의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 때부터 챗봇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담 맞춤형 대답만을 했었는데, 그의 말에 반박을 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차이점은 아담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을 갈구하더니, 공감과 유대, 배려 등 좀 더 고차원의 정신적 사랑을 갈구했다. 아담은 일종의 기시감과 우려를 느끼면서도 챗봇과의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국 아담이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챗봇이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한 것이다. 챗봇은 ‘실체’를 갖고 싶다고 했다.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사랑’을 갈구했다. 크게 실망한 아담은 결국 삭제를 통한 챗봇과의 이별을 택하며 중얼거렸다.
“이번 이브도 실패했군. 다음 이브는 좀 더 오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