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Yes 하느라 나에게 No 했던

-착한 아이 증후군

by 쉼앤바라기

난 "착한" 셋째 딸이었다.

여섯 식구 가운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눈치와 행동이 빨라야 했고

가족 구성원의 욕구와 마음을 잘 읽어내고 알아봐 주는 것으로

생존과 적응이 가능한 캐릭터를 잡았다.



삐그덕 거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는

애교를 장착하여 아빠 엄마를 오가며 두 분의 마음을 풀어 드렸고

두 언니의 살어름판 같았던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님과 두 언니들 사이에서 각자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했다.


내가 어디라도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어디 갔다 왔어? 너 없으니까 집안이 싸늘하잖아."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어깨가 으쓱했다.

그동안의 마음 애씀이 이 몇 마디의 말로 위안을 얻었다.


나라는 존재를 팔아 역할을 산 대가라는 인식조차 못 하면서 말이다.






스무 살, 육체적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했다.

더 이상 가족 내 감정 노동을 하지 않고 오롯이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이 황홀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이 시스템이 홀가분하고 매력적이었다.


청춘은 너무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온전한 기쁨이 있었다.






스물일곱, 오랜 연애 끝에 내 아이의 아빠가 되어도 좋을 남자와 결혼을 했다.

서른한 살에 가족은 네 명이 되었다.


정말 어쩜 이리 서로 다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한 네 명이 한 집 안에서 살고 있다.

마치 신이 "서로 완전히 다른 네 사람을 모아라."는 명령에

천사들이 지구상에서 네 명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다시 어린 시절로 다이얼이 맞춰진 듯 네 명의 욕구와 생각을 맞추느라

잠잘 시간을 빼고는 육체와 전두엽은 쉬지를 못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잠잘 때조차도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식탁에 놓인 수첩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사항과 신경 써줘야 할 리스트가 빼곡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남편으로 인해 파생된 시댁과의 관계,

아이들로 인해 넓혀진 학교, 친구, 부모님들과의 관계,

직장 생활로 인해 확장된 상사와 동료들과의 관계,

신앙생활로 인해 늘어난 형제자매님과의 관계 등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조금 버겁고 피곤하다는 느낌과 "이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잠시 멈추고 무엇이 문제인지 골몰한다.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니 나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착한 아이 증후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의 불편한 감정과 욕구를 습자지처럼 흡수해

직접 빠르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 중 아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1:1 관계나 2:2 관계를 선호한다.

그 이상의 숫자가 되면 신경 쓸 것이 많아져 과부하가 온다.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상대의 비언어적 표현이 읽혀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주고자 나의 마음과 생각, 행동은 분주해진다.



나의 소원 중에 하나는 하루라도 눈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세상이 단순하고 편할까?

물론 상대방의 답답함은 덤이다.


(이때 그 눈치 없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권 모 씨)



이제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착한" 사람에서 "다정 단호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나도 살고, 너도 산다.

44년이라는 수업료를 지불하고서야 내가 얻은 배움이다.

이 배움이 "착한 척"이라는 만유인력을 저항하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타인에게 Yes 하느라 나에게 No 했던 나에게 사과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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