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새벽배송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결심"이다

by 쉼앤바라기

나는 이제야 "결심"이라는 것을 했다.

나를 잘 키워보기로.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결심"을 했다.

“이 아이를 잘 키우자!”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직장에 사표를 냈다.

월급을 꽤 많이 주는 직장이었음에도

양가 부모님의 만류에도 거칠 것이 없었다.

몇 달 후에 양가 부모님들이 왜 만류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역시 한 가지를 겪어봐야 한 가지 지혜가 생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는 말에 아무리 힘듦을 구겨 넣어봐도 또 다른 힘듦이 남아있었다.

이제까지 겪어본 적 없는 문제의 연속이었다.



양육과 관련된 학습은

12년의 교육과정에 왜 없는지 교육부에 가서 따지고 싶었다.

이렇게 어렵고 중요한 내용이 교과서 한 페이지에도 없다는 것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전에는 인생이 나 혼자서만 잘하면 되는 단식경기였다면

육아는 2인 3각 경기처럼 아이와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단 한 개도 없는 복식경기였다.



'이 아이가 만 한 살이 되면 난 다시 세상으로 나가리라.'라는 "결심"으로 고된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만 한 살이 된 아이는 예상보다 아직도 너무나도 어리고 유약해

"결심"은 먼지처럼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1년 키웠는데도 여전히 아기였다.

사람은 사과, 딸기, 배추, 무, 벼, 보리 등 이런 것들과 종자가 달랐던 것이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 내 인생의 둘째는 절대 없다고 또 "결심"을 했지만

아이가 18개월이 되자 슬그머니 둘째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역시 인생은 내 생각의 정도를 벗어나 샛길로 가는

생각의 오차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둘째를 임신했다.

그것도 계획하고 바로 곧바로

이런 일은 왜 "결심"대로 되는지 신의 치트키가 발동했나 보다.

“그래, 마지막으로 이 아이까지만 잘 키우자.”라고 또 "결심"을 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두 아이를 키워야 하니 나를 키우는 일은 잠시 보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두 아이를 키웠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첫째는 고등학생이 되어

내가 그렇게 원망했던 교육과정 안에서 치열하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고,

둘째는 중학생이 되어

전두엽 공사로 인해 행동이 생각을 새치기하는 현상을 빈번하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이 키워진 사람은 나 자신이다.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배우고 실전 훈련을 지속하다 보니

결국에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 듯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누구보다 과하게 챙겨 놓은 "자녀의 은혜"이다.




이제 드디어 때가 되었다.

이제 좋은 사람에서 멋진 사람으로 키워야 할 사람이

나 자신 일 수 있는 이 시간과 나이가 너무 좋다.



44살.

그동안 나의 장점과 단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 등

나에 대한 데이터도 충분하니 이제 본격적으로 키워볼 만하겠다.

진짜 나는 지금부터 키운다는 사실이 신나고 설렌다.



준비됐나요?

"준비됐어요~!"



본격적인 시작은 새벽 글쓰기이다.

일상은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태클이 연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시간을 온전히 만들 수 있는 시간은 현실적으로 새벽뿐이다.



나의 비상구, 새벽시간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길,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이란 선물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새벽 배송으로 수령한다.



새벽 배송으로 받아본 신선한 오늘이란 박스를 연다.

나를 잘 키워보기로 한 "결심"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