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품위 있게 이긴다는 것」
<손자병법 孫子兵法>을 처음 읽은 건 20대를 마치고 30대에 접어들며 군에서 제공하는 고등군사교육에 입교했을 때였다. 당시 교관들 중 손자병법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있었고, 젊은 장교들에게 손자병법이 주는 ‘싸움의 기술’을 강조하며 날마다 필사하기를 독려하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이자 ‘승리의 비법’으로 보였다.
특히 ‘싸움은 속임수다(兵者詭道 병자궤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 이기는 것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같은 문장들은 마치 강력한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며 때로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상처는 더 오래 남았다. 누구보다 강해야 했던 내가, 관계 앞에서는 왜 이렇게 서툴렀을까.
30대 초반의 나는 손자병법을 오로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상황을 빠르게 장악하고, 주도권을 잡는 것이 곧 유능함이라 믿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빠르게 움직이는 태도가 실무에서도 필요하다고 여겼고, 때로는 상대보다 한 수 앞서기 위해 계산된 접근을 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책임의 무게가 깊어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중요한 진급을 앞둔 40대 초반, 나는 더 이상 무모하게 돌진하는 방식만으로는 조직을 이끌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손자병법의 깊은 철학을 다시 들여다보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야말로 진짜 지휘관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상대를 꺾기보다는, 상황을 분석하고 설득과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변화해 갔다. 후배에게는 지시 대신 동기를 부여했고, 상관에게는 정제된 분석과 제안으로 설득했다. 그렇게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가며 나의 리더십은 이전과는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손자병법의 ‘벌모(伐謀)’, ‘벌교(伐交)’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된 첫걸음이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의 갈림길에 선 지금, 손자병법은 여전히 나의 든든한 길잡이다. 특히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이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삶의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대응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손자병법의 네 가지 원칙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벌모(伐謀, 상대의 의지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처음 만난 이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과거처럼 내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듣고자 노력한다. 과거라면 ‘이건 아닌데요’라고 잘라 말했을 상황에서도 이제는 ‘혹시 이런 방향은 어떠세요?’라며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벌교(伐交, 관계의 고립을 방지하기): 전역 후 처음 만난 모임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빠질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내 경험을 짧게 나누었다. 의외로 사람들은 귀 기울여주었고, 다음 만남에서는 먼저 말을 걸어왔다. 고립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내가 먼저 다가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수(守, 나의 강점 지키기): “군대에서 있었던 일은 민간에서 도움이 안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위기 대응, 시간 관리, 판단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자산이라는 것을. 내 안의 강점을 지키고 갈고닦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설 수 있는 기반이었다.
공(攻, 기회를 부드럽게 잡기): 한 번은 후배가 진로 상담을 요청했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시작할 뻔했다. 하지만 꾹 참고, “넌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되물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정리된 생각을 이야기했고,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선택을 했다. 그것이 바로 ‘기회를 부드럽게 잡는’ 손자병법식 공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