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피트, 땅은 평, 우리는 미터법
“삼만 피트, 유지해! 십 마일 이상 분리해!”
공군에 근무하던 시절, 매일같이 쓰던 말이다. 항공기의 고도는 언제나 미터가 아니라 피트(ft)였고, 거리는 킬로미터가 아니라 마일(mile)이었다. 우리 땅 위에서는 미터법이 표준이지만, 하늘 위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가 지배하고 있었다.
항공은 태생부터 미국의 영향력이 컸고, 미국식 단위는 곧 하늘의 표준이 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군도, 민간 항공도 모두 피트와 마일을 쓴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단위의 세계가 펼쳐진다. 아파트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여전히 “30평”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1평은 3.3㎡”라고 배웠지만, 막상 집을 계약하려 계산기를 두드리면 단위 환산이 복잡하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기 두 근 주세요”라는 말은 지금도 익숙하다. 계산기로는 1.2kg이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두 근’이 자연스럽다.
결국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단위를 달리 쓴다. 하늘에서는 피트와 마일을 쓰고, 집에서는 평을, 전통시장에서는 근을, 그리고 과학·산업·교육 현장에서는 미터법을 쓴다. 숫자는 같아도 단위가 달라지면 풍경은 전혀 달라진다.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미터법(SI)을 공식 단위로 사용한다. 1959년 법률로 도입한 이후 교육, 과학, 산업, 상거래에서 미터, 킬로그램, 리터가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항공과 항해 분야에서는 피트(ft)와 노트(knot)가, 생활 관습에서는 평과 근이 여전히 쓰인다. 이런 보조 단위를 제외하면, 한국은 전형적인 미터법 사회다.
단위는 단순히 거리를 재는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역사와 권력이 스며 있다.
179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터법은 지구 자오선의 1천만 분의 1을 기준으로 정의되었다가, 1983년 이후에는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재정의되었다. 영국에서 출발한 야드·파운드법은 미국에서 생활 단위로 굳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사람의 신체 치수를 기준으로 발전한 척이 오랜 세월 이어졌다.
1999년 NASA의 화성 기후 탐사선은 단위 변환 오류 때문에 궤도 진입에 실패해 3억 2천만 달러를 날렸다. 뉴턴-초와 파운드-초를 제대로 변환하지 못한 작은 실수가 거대한 우주선을 잃게 만든 것이다. 단위의 차이가 때로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단위는 숫자 그 이상이다. 집에서는 평이, 하늘에서는 피트가, 과학과 산업 현장에서는 미터법이 쓰인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위 속에는 시대의 흔적과 문화의 무게, 그리고 국제적 합의가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단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비로소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