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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Jung Oct 17. 2022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세상의 진리 이타성,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

나는 어려서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인지 불합리한 이 세상에 의문을 품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 보니 세상에 대한 내 의문은 끝내 철학의 영역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는데,

세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게 어떤 작용을 일으켜서 지금의 세상이 되었는지,

결국 '세상의 진리'가 무엇인지 끝없이 생각한 결과, 내가 발견한 것은 '세상은 아름답다'였다.

단순히 미관적인 이유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아름다움의 본질이 '이타성'이라고 정의 내렸는데, 인간이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서 이타적인 성향을 가져야만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아름다움의 본질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단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예쁜 형태를 지닌 것들, 여성, 꽃, 그림, 조각 등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 그런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드넓은 지구의 자연과, 무한한 우주를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름다움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다양한 것들에 적용될 수 있는가?

사실상 모든 것에 아름답다고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들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질문들 끝에 아름다움이란 결국 이타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세상은 이타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소리가 된다.


세상이 이타적이라니? 불합리로 가득한 이 세상에 이타성?

말도 안 된다. 나는 이것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생각은 이를 점차 확실하게 만들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다른 대상이 인식하기에 좋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이타적이다.

인간은 본인이 인식했을 때 아름다운 것을 욕망하는 본능이 있다.

그것들을 욕망하는 것은 결국 그것들이 이타적이며,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환경,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외모, 아름다운 그림 등 시각적인 것들.

그러나 시각적인 것뿐만이 아닌 아름다운 음악, 향기로운(이타적인) 냄새,

맛있는(이타적인) 음식, 부드러운(이타적인) 촉감...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인지 기관으로 감각하는 것에 이타성을 띈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타성이 강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욱 아름답다 말하며, 더 강하게 욕망한다.

즉, 우리 인간에게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 아름다움의 포괄성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것을 보다 본질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 보니 마침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것들이었다.

여기서 존재란 우리가 이름을 붙인 것들이다. 사람, 동물, 자연, 우주, 세상 등등 말이다.


'존재'는 다른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는 존재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존재라는 것은 다른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 있어야만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존재해야 존재할 수 있다.

존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세상 그 자체일 것이다.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구성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는 결국 '존재는 다른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상호보완적이며, 그 자체로 이타적이다.


반대로 이 세상은 이기적인 것들로 가득해 보이기도 한다.

동물은 다른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변화시킨다.

그럼에도 잘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결국 범위와 수치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것들도 잘 생각해보면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불합리는 이타성이 낮았고 또한 범위도 작았다.

개인과 소수에게만 집중적으로 이타성을 띄고 있던 것들이 그러했다. 그것이 불합리의 정체였다.

세상은 불합리하지 않았다. 세상의 진리에 따라 그저 아직 이타성이 낮았을 뿐이었다.

세상의 발전이 덜 되었을 뿐이었던 것이었고,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깨달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단위로 점차 내려가는 미시적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면,

동물과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물이다. 그리고 생물이라는 것은 세포들의 군집체이다.

세포들은 세포들끼리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서로를 유지한다. 그것은 이타적이다.

더 미세한 단위로 내려가 본다 해도 여전히 이타성을 띄고 있다.

원자를 보면 다양한 전자들의 결합구조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전자들이 서로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보다 더 발전된 원자가 되는 것이다.

더 깊게 내려간다고 해도 쿼크가 있고, 쿼크 또한 또 다른 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적어도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은 이타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자, 이제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타성을 찾아 작은 단위로 내려갔다면, 반대로 높은 단위로 올라가 거시적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가 올바르게 다른 존재와 하나를 이루게 될 때 그것은 새롭고 발전된 무언가가 된다.


보다 알기 쉽게 인간을 예로 들어 보자면,

인간은 둘이 모여 연인이 된다.

연인은 아이를 낳아 셋이 되고 가족이 된다.

가족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사회가 된다.

사회가 모여 더 큰 집단을 형성하면 국가가 된다.

국가가 모여 하나를 이루면 인류가 된다.

아직은 먼 미래이지만 인류가 우주로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아가게 되어 신인류가 되었을 때,

다양화된 인류가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다.




- 퇴보와 발전 그리고 인간


그렇다면 퇴보와 발전의 개념 또한 이 아름다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보다 덜 아름다운, 이타성이 낮은 것이 퇴보한 것이고,

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타성이 높은 것이 발전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전을 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에 따른 퇴보와 발전을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과거에 비해 확실히 아름다워졌다.

이득을 위해 타인을 혹사하며 죽음으로 내몰고 전쟁을 벌였던 우리 인간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해왔던 우리 인간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은 살인을 꺼리고, 전쟁을 반대하며, 자연을 보호하고자 한다. 아름답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의 아름답지 못한 잔재를 여전히 품고 있다.

여전히 살인은 일어나고, 독재가 있으며,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아름답지 못하다.


우리 인간은 분명 발전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이며, 생존이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시작은 개인이 아름다워져야 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 인간들은 존재로서 더욱 아름다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진리이자, 존재의 의의이며,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모든 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


내가 생각 끝에 찾아낸, 내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아름답게 하는 것부터, 나아가 주변 사람들을 아름답게, 더 멀리, 더 많이 아름답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었다면, 여러분들도 분명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아름다움의 가치를 추구해주었으면 한다.

그저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 진정한 아름다움을.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들은 재미와 즐거움, 쾌락 따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전부 이타성을 가질 수 있으며, 아름다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타적인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이타적인 쾌락 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본인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쾌락을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을, 사회를, 인류를,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키는 나의 가치이자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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