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by Joy of Inquiry

약자가 강자를 살릴 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어린 단종이 힘을 잃고,

삶의 의지도 잃고, 왕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도 잃어가던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를 붙잡는 것은 권력도, 신하도 아니었다.
유배지의 백성들이었다.


자기들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올리고,
왕이 잘 드시는지 살피고,
조금이라도 드시면 기뻐하고,


그리고
왕이 자기 마을에 와서
자기 마을을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 장면은
보는 사람 마음에
조용히 오래 남는다.


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생 때,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 반 담임이었다.


추운 겨울.
공과공부를 하러 교회 별관에 갔는데,
교회 옆 단독주택을 매입해서 사용하던 곳이라
그날따라 방이 유난히 추웠다.


작은 방에 아이들 네 명이랑
옹기종기 앉아 있었는데

내가 좀 추워했나 보다.


한 아이가 나를 보더니
“선생님 많이 추워요?” 하면서
자기 점퍼를 벗어서 내 앞쪽에 덮어주었다.


그 작은 점퍼로는
성인인 나를 덮기엔 당연히 부족했는데

그 아이도 덮어주고 나서야 그걸 알았던 것 같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나머지 아이들도
하나씩 자기 점퍼를 벗기 시작했다.


그 작은 점퍼들을 이어서 나를 덮어주던 그 꼬마 남자 어린이들은
겨우 이어진 점퍼가 선생님에게 덮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리고 내가 따뜻해하는 것을 보고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났다.


그 어떤 겨울보다 따뜻한 날이었다.




스물셋, 대학을 막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고3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었고
학교는 입시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해 봄,
아버지가 폐암 3기 진단을 받으셨다.


나는 첫째 딸이었고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다.


퇴근하면서 늘 아버지께 늘 전화해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 떨며 웃는

우리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런 아버지가
어쩌면 함께할 시간이 짧을 수 있다는 것,
그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고3 담임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려고 했다.

특히 우리 반 아이들에게.


숨긴다고 숨겼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쩌면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야간 자습 시간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제발 아빠를 옆에서 돌봐달라고.


아이들이 들을까 봐
숨죽여 통화했지만
눈물은 잘 감춰지지 않았다.


그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말이면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 병실 침대에 같이 올라가
커다란 입시 배치표를 펼쳐 놓고
우리 아이들을 어디에 지원하게 하여 합격시킬지

아버지와 작전을 짰다.


그때는 스무 살 갓 넘은 철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애교쟁이 딸이어서
그게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버지는 내가 가면 웃으셨고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내가 병실에 오기 전에는
진통제 개수를 늘려서 드셨다는 것을.


딸이 걱정할까 봐

그리고 자녀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그게 우리 아빠의 성품이었다.


그 시절은
내가 원하던 학생들과 함께하던

활짝 핀 벚꽃 같은 핑크빛 시절이었지만,

아버지의 발병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책상 위에 롤케이크와 예쁜 편지가 한통 놓여 있었다.


꽤 길게 써 내려간 편지였다.

누가 썼는지는
사실 단번에 알 것 같았다.


평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유난히 마음이 많이 담겨 있던 아이가 있었고,
그런 아이들이 우리 반에는 몇 명 있었다.


그래서 몇 명이 떠올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편지는
한 아이의 것이기보다

그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 전체가
나에게 보내는 마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읽고 나서

그때의 나는
조금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보통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살아보면

약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오히려 누군가를 살리는 순간이 있다.


왕을 살린 것은 백성이었고


어느 추운 겨울날 나를 따뜻하게 해 주던 것은
작은 자신의 점퍼를 벗어주던 꼬맹이 남자아이들이었고


회색 빛 시간의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한 아이의 편지이면서도
결국은
그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약자가 강자를 살린다는 말은

그냥 좋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의해
오히려 지켜지면서

자신의 자리를
끝내 놓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